경기, 아무리 불 지펴도 백약 무효… 소비심리 ‘세월호’ 직후보다 꽁꽁

입력 2014-11-27 02:18
경기도 안양의 재래시장에서 생선가게를 20년 넘게 꾸려왔다는 김덕수(가명·63)씨는 “이렇게 지독한 불경기는 처음”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생선을 찾는 소비자들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좀처럼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증권사가 밀집한 서울 여의도 유흥가 골목에도 활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유흥주점 주인 안모(55·여)씨는 “요즘엔 비싼 양주를 찾는 손님들이 거의 없어서 아예 소맥(소주+맥주) 위주로 안주 메뉴를 바꿨다”고 말했다. 예전엔 양주 손님들이 즐겨 찾던 과일·치즈 세트가 주력 메뉴였는데 이젠 모듬전, 골뱅이소면 등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서울 양천구의 주부 이미영(65)씨는 장보기가 겁난다. 회사를 퇴직한 뒤 아파트경비원으로 일하던 남편이 최근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아들고는 더욱 돈쓰기가 무섭다. 20만원을 준다던 기초노령연금은 보유 주택 가격이 연금 지급 기준을 넘었다며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손주들이 놀러오는 날에는 큰 맘 먹고 1만원짜리 몇 장 꺼내들고 장을 보러 가지만 장바구니는 부실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26일 11월 소비자동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경기 상황 판단과 향후 경기 회복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는 바닥을 뚫을 기세다. 새 정부 출범으로 인한 기대심리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읽힌다.

1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3으로 지난달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5월의 105보다도 낮다.

이 지수는 소비자들의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낸다. 6개 주요 지수(현재생활형편 생활형편전망 가계수입전망 소비지출전망 현재경기판단 향후경기전망)를 이용해 장기평균치(2003년 1월∼2013년 12월)를 기준값 100으로 삼고 100보다 크면 낙관적이고 100 미만이면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2년 하반기 99∼101을 맴돌던 이 지수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 심리를 반영하며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월 104를 기록했다. 이후 추세적 상승을 나타내며 지난 1월 109로 최고점을 찍은 뒤 내림세로 돌아서 결국 이달 출발선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하면 6개 주요 지수 중 가계수입전망(100→101)과 현재경기판단(73→74)만 소폭 상승했고 현재생활형편(90)은 유지, 나머지는 모두 하락했다. 특히 6개월 뒤 경기 상황을 현재와 비교해 예측하는 향후경기전망은 6포인트나 떨어졌다. 정부의 경기부양대책이 소비자들의 심리를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한 차례의 추경과 네 차례 부동산대책, 여섯 차례 투자활성화대책을 내놨다. 한은도 정부의 경기부양 기조에 발맞춰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사상 최저 수준인 2%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백약이 무효’인 셈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세계 34개 금융기관의 내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중간값)는 3.6%로 떨어졌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