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정책 당국의 심기가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들떠 있던 것과는 딴판이다. ‘경제정책 3개년 계획’이 호평을 받았던 호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와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부쩍 ‘골든타임’ 얘기를 반복하며 때를 놓치지 말 것을 주문하고 나서는 것은 정부의 경제상황 인식이 예사롭지 않음을 방증한다. 물론 국회에서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과 이를 반영한 예산안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
중국 금리인하 등으로 경제팀 불안 가중
근본적으로는 주요 경제 대국들의 잇따른 통화완화 정책 발표 등 대외적 요인에 압박감이 심해진 때문으로 보인다. 물건을 잘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원화 값이 다른 나라 통화보다 비싸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주말 중국까지 가세해 기준금리를 내렸으니 정부가 다급해진 것은 당연지사다. 가뜩이나 기술경쟁력 면에서 우리를 바짝 추격 중인 중국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자 불안감이 더 증폭됐을 것이다.
하지만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내뱉었다가 거둬들였던 디플레이션 초기단계 임박 발언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을 통해 느닷없이 재등장한 것은 유감이다. 25일 기재부 기자단 세미나에서 KDI는 ‘일본의 1990년대 통화정책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우리 경제가 최근 수요 부진 및 저인플레이션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어 디플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일본처럼 부동산 가격 하락-GDP 디플레이터 하락-소비자물가지수 하락 등의 악순환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의 하방경직성 정도만 언급해 온 KDI가 디플레를 언급한 것은 새 경제팀이 들어선 이후 처음이다.
앞에서 유감이라 표현한 것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단지 진부(old)한 팩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가 국책연구기관까지 동원해 진단과 처방을 제대로 내리고 있는 것인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KDI의 세미나 주제는 당초 내년도 경제전망에 관한 것이었으나 일본 얘기로 갑자기 바뀌었다고 한다. 차라리 중의원 해산까지 이르게 된 아베 신조 총리의 최근 2년간 ‘아베노믹스’의 실패 원인을 주제로 삼았더라면 우리 경제의 최근 상황에 견줘 타산지석 사례로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뾰족한 정책이 없는 정부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만 꽂혀 있다 보니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보고서를 동원해 애매한 한은만 압박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 바람대로 기준금리 인하만 해주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한은이 마지못해 올 들어 두 차례 금리를 인하했지만 소비심리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11월 소비자들의 향후경기전망지수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이니,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니 해서 부동산금융 규제를 풀어줬지만 가계는 은행에서 빚내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빚을 갚는 데 쓰고 있지, 정부가 바라는 만큼 집값이 뛰거나 소비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기회복에 성공한 미국에서 배워야
미국이 금리정책으로는 옴짝달싹도 못할 제로금리 상태에서 생각해낸 것이 양적완화였고 자산을 매입해 장기금리를 떨어뜨린 이 정책이 경기호조로 이어지고 있음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본은 국민들의 경제심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2020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한다는 목표에만 매달려 무리하게 소비세율 인상 등을 밀어붙이다 역풍을 맞았다.
대통령 한마디에 최고 금융당국자가 가는 곳마다 기술금융을 복창하는 바람에 은행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잠재 부실을 쌓고 있다. 기술금융은 자본을 투자받아야지 고객이 맡긴 돈을 퍼 줘서는 백전백패다. 소비를 위해 가계소득을 증대해야 한다면서 느닷없이 대기업들이 주장하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흘리는 것은 모순이다. 일본을 비웃고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미국처럼 우리만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창조경제다.
dhlee@kmib.co.kr
이동훈 경제부장
[데스크시각-이동훈] 금리인하? 발상을 바꿔라
입력 2014-11-27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