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고택은 옛 추억을 품고 있다. 처마 아래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메주와 시래기, 창문 앞에서 어른거리는 달빛과 별빛, 밤새 문풍지를 파르르 떨게 하는 겨울바람 등 어느 하나 정감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다. 지글지글 끓는 아랫목에서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에 소복소복 쌓이는 눈, 그리고 순백의 마당에 찍혀 있는 강아지 발자국은 한겨울 한옥에서나 만나는 풍경들이다. 한국관광공사는 ‘12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전남 구례의 쌍산재 등 한옥 5곳을 선정했다.
◇쌍산재(전남 구례)=지리산에 기대어 섬진강을 바라보는 마산면 사도리의 상사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불리는 곳으로 그 중심에 쌍산재가 위치하고 있다. 쌍산재는 1만6500㎡가 넘는 집터에 살림채, 별채, 서당채는 물론 대숲과 잔디밭까지 갖춘 고택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보고 건너채가 무심한 듯 오른쪽으로 비켜 앉은 쌍산재의 모든 한옥은 개별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갖춰 숙박에 불편함이 없다.
쌍산재 대문 앞에 위치한 당몰샘은 물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장수마을로 불리는 이유가 당몰샘의 수질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상사마을은 지리산둘레길이 지나가는 구간으로 산책하기에도 좋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 ‘단새미’에서 차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 인근에 한옥 체험이 가능한 운조루와 곡전재도 있다(쌍산재 061-782-5179).
◇계암고택(충남 서산)=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생가와 담장을 이웃한 음암면 한다리마을의 계암고택은 정순왕후의 작은댁이다. 김기현 가옥으로도 불리는 계암고택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 양반댁으로 솟을대문 좌우로 돌담이 길게 뻗어 있다. 담장 위로 날아갈 듯 사뿐히 치켜올린 고옥의 추녀가 아름다운 고택의 안채 부엌은 한옥 체험객들이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개조됐다.
계암고택에는 집수리할 때 나온 기와로 꾸민 행랑채의 고려와당박물관을 비롯해 보고 즐길거리가 많은 편이다. 와당 만들기, 시조창 부르기는 물론 밤으로 만든 궁중 간식인 율병 등 전통음식 만들기도 경험해 볼 수 있다. 서산 여미리마을의 서산유기방가옥은 드라마 ‘직장의 신’에 등장한 곳으로 한옥 체험이 가능하다. 마을 입구의 여미갤러리는 정미소를 리모델링한 곳으로 카페를 겸하고 있다(계암고택 041-688-1182).
◇청송한옥민예촌(경북 청송)=주왕산 입구에 위치한 청송한옥민예촌은 송소고택 등 청송에 산재한 고택을 재현한 공간으로 8개동 28개의 방에서 숙박 체험을 할 수 있다. 디딜방아가 있는 영감댁, 송소고택 안채를 재현한 정승댁, 누마루가 인상적인 훈장댁, 외양간이 있는 교수댁, 마당에 평상을 펼쳐놓은 주막 등 저마다 개성이 우러난다. 방 안에는 머릿장, 반닫이, 경상 등 고가구를 배치해 예스러움을 더했다.
청송한옥민예촌 옆에 위치한 도예촌에는 심수관도예전시관, 청송백자전시관, 전통가마, 도예공방이 한데 모여 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이 일본에서 우리 전통기법으로 빚어낸 심수관가의 도예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도 청송에는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송소고택 등 한옥 숙박 체험 고택이 수두룩하다. 수질이 미끌미끌한 솔기온천과 달기약수로 끓인 닭백숙은 청송 여행의 덤이다(청송한옥민예촌 054-874-9098).
◇조견당&우구정가옥(강원도 영월)=김종길 가옥으로 불리는 주천면의 조견당은 한때 99칸이 넘는 고택이었으나 한국전쟁 중 대부분 소실돼 안채만 남았다. 느티나무 고목 아래에 위치한 안채의 역사는 200여년. 반면에 사랑채는 최근 복원됐다. 한옥 체험이 가능한 방은 모두 아홉 개. 종부가 들려주는 고택의 사연을 들으며 다도 체험을 하다 보면 하루가 모자란다. 종부가 맨드라미로 만든 차 맛도 일품이다.
시골집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남면의 우구정가옥은 안채, 사랑채, 헛간채로 이루어진 한옥이다. 장작을 때는 아궁이와 가마솥이 정겨운 시골집으로 집 밖으로 평창강이 고요히 흐른다. 남부지방 고택처럼 번듯하고 웅장한 느낌은 없지만 투숙객에게 고구마 몇 개를 건네주는 안주인의 훈훈한 인심이 정겹다. 조견당에서 우구정가옥으로 가는 길목에는 한반도 지형이 위치하고 있다(조견당 033-372-7229, 우구정가옥 033-372-5704).
◇조선왕가(경기도 연천)=연천읍에 위치한 조선왕가의 염근당은 본래 서울 명륜동에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옆에 있던 염근당은 대학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사라질 운명이었으나 집주인이 연천으로 옮겨 지으면서 행랑채인 사반정, 별채인 자은정 등 객실 내부에 현대식 화장실을 갖춘 부속건물을 지어 조선왕가로 명명했다. 염근당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고종황제의 손자 이근이 건축하고 집 이름이 염근정이라는 상량문이 발견됐다.
조선왕가에서는 숙박 외에도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갖가지 약재를 넣어 끓인 물로 온몸의 독소를 빼내는 왕가비 훈욕 세러피, 황토편백찜질방에서 찜질하기, 약재가루를 넣어 비누 만들기 등이 대표적이다. 글램핑장(겨울철 제외)과 효소차 및 약선음식을 맛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운영한다. 연천에는 ‘지질학 교과서’로 불리는 동이리 주상절리를 비롯해 전곡선사박물관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조선왕가 031-830-5600).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훈훈한 情은 아랫목서 펄펄 끓는다
입력 2014-11-27 0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