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거슨시 ‘약탈·방화’ 전쟁터 방불… 美 전역 시위 확산

입력 2014-11-26 04:19

밤이 깊을수록 소요는 격렬해졌다. 약탈과 방화가 퍼거슨시를 휩쓸었다. 시위대는 경찰차를 공격하고 불태웠다. 군중 일부가 상점 유리를 깨고 약탈하는 모습이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TV 카메라에 잡혔다. 세인트루이스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시위대에 의해 점거됐다.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대배심이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을 총으로 사살한 백인 경관 대런 윌슨(28)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퍼거슨시는 24일 밤(이하 현지시간) 성난 군중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브라운의 가족들은 불기소 결정에 “매우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항의 시위는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이 내려진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며 자제를 당부했지만 시위대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제이 닉슨 미주리주 주지사도 시위대와 경찰 모두 양측을 존중해 달라고 촉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세인트루이스 경찰은 밤사이 방화와 약탈에 가담한 시위대 61명을 체포했다고 25일 밝혔다. 존 벨마르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서장은 “폭력 시위로 경찰 차량 2대와 건물 최소 12채가 불에 탔다”면서 “지난 8월에 처음 사태가 터졌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퍼거슨시 인근에서 경관 한 명이 총격을 받았지만 대배심 평결과 무관한 사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은 퍼거슨 경찰서 부근에 모여든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했다. 퍼거슨 시교육청은 휴교령을 내렸고, 주 방위군은 비상사태가 선포된 퍼거슨시 일대의 주요 관공서 방어에 나섰다.

항의 시위는 동·서부를 가리지 않고 주요 대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최대 도시 뉴욕에서는 수백명의 군중이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에 모여 주먹을 하늘로 치켜세우고 침묵으로 항의했다. 불어난 시위 행렬은 도로를 점거하고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인종차별 경찰은 필요 없다” “인종차별이 살인자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타임스스퀘어까지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자는 경찰을 백인 우월주의 과격단체인 KKK에 비유했다. 빌 브래튼 뉴욕시 경찰국장은 시위대가 뿌린 붉은 액체를 얼굴에 맞는 봉변을 당했다.

캘리포니아주 등 서부지역에서는 도로에 드러눕는 시위가 유행처럼 번졌다. 로스앤젤레스 오클랜드 시애틀에 이르기까지 수백명의 시위대가 경찰 총격에 숨진 브라운의 사진을 들고 가두행진을 벌이다가 드러눕는 시위 행렬에 동참했다. 오클랜드는 시위대가 주요 고속도로 통행을 막기도 했다.

퍼거슨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소요 사태에 따른 약탈 피해가 발생할까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한인 상점 밀집구역은 불이 난 퍼거슨 경찰서 쪽과 거리를 두고 있어 현재까지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8월에도 나흘간 폭동으로 한인 상점 3∼4곳이 피해를 입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