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산안 처리시한 엄수는 국민의 명령이다

입력 2014-11-26 02:14
우리 헌법 제54조는 새해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회계연도 개시 전 30일은 12월 2일이다. 이런 규정을 둔 것은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확정된 예산 규모에 따라 이듬해 사업 계획을 제때 수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조항은 ‘의결하여야 한다’는 의무규정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03년 이후에는 단 한 번도 기한 내에 의결하지 못했다. 재작년과 작년의 경우 해를 넘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올해는 국회가 위법의 나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여야가 11월 말까지 예산안 심사를 끝내지 못할 경우 정부가 낸 예산안이 12월 1일 열리는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며, 12월 2일 원안이나 수정안을 놓고 표결하도록 규정한 국회선진화법이 처음 적용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이를 반드시 지킬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선 “여당이 강행 처리할 경우 정치와 국회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며 정기국회 마감일인 9일까지 처리해도 무방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안 될 말이다. 일방적 강행 처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법정시한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올해를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 처리되는 원년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과반수가 아닌 ‘60% 찬성’ 의결을 도입함으로써 식물국회를 만들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지만 예산안 의무처리 규정은 국민들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다. 사문화되다시피 한 헌법 규정을 되살려 법치주의를 확립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과 국민의 약속이기도 하다.

새정치연합은 법인세 인상, 담뱃세 인상, 누리과정 예산 확보 등과 관련한 쟁점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으면 12월 2일 처리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와의 연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국가정책 및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을 끈다고 해서 특별한 대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당에 일방적인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해 이번주 안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사자방 국조의 경우 예산안과 전혀 별개 사안임을 감안할 때 연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산안 처리 후 별도로 협상하는 게 순리다.

새누리당의 경우 국회선진화법으로 명분을 확보했다고 해서 밀어붙이기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 국회선진화법이 큰 우군이긴 하지만 입법 정신은 합의 처리다. 여야가 누리과정 예산 확보 방안에 큰 틀의 합의를 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밤을 새워서라도 협상을 계속해 다른 쟁점에 대해서도 조기에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정치권이 2015년도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