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신형진입니다.”
커서가 깜빡이며 두 문장이 입력된 시간은 3분. 보통 사람이 자판을 이용하면 3초도 채 걸리지 않는 단순한 문장이다. 하지만 22년째 온몸이 굳는 희귀병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신형진(30)씨에게는 한 글자, 한 글자가 기적이었다. ‘연세대 스티븐호킹’으로 불리며 컴퓨터과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신씨는 25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투모로우 솔루션 랩에서 삼성전자 안구 마우스 아이캔플러스(EYECan+) 시연에 나섰다. 아이캔플러스는 눈과 입만 움직일 수 있는 그에게 안구의 움직임만으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마우스다.
삼성전자는 2012년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낸 아이디어로 안경 모양의 안구 마우스 ‘아이캔’을 선보인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벤처 창업을 지원하는 ‘C-랩’의 1호 과제로 선정해 10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안구 마우스를 단돈 5만원의 재료비로 탄생시켰다. 이번에 공개된 아이캔플러스는 아이캔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안경 모양에서 탈피해 모니터 아래에 박스 형태로 장착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6월부터 삼성전자 DMC연구소 박정훈 책임이 주관해 프로젝트를 맡아왔다. 안경 형태에서는 렌즈 구석으로 갈수록 안구 움직임의 인식도가 떨어지는 등 불편함이 있었지만, 박스 형태의 아이캔플러스는 안구 인식의 정확도를 높였다.
신씨는 아이캔플러스로 자신이 평소에 즐기는 인터넷쇼핑 모습도 선보였다. 인터넷 도서 구매 사이트인 예스24에 접속해 전자책(e북)인 ‘폭풍의 언덕’을 클릭하곤 장바구니에 담았다. ‘구매에 동의하십니까’라는 물음이 뜨자 ‘예, 동의합니다’라는 조그마한 체크 박스에 커서를 갖다 대고 주문을 완료했다. 또 메신저 ‘챗온(ChatOn)’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모습도 시연했다.
이어 신씨는 워드파일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다며 글씨를 입력해 나가기 시작했다. 글자는 모니터 중앙에 뜬 키보드 자판에 시선을 응시하는 방법으로 입력됐다. 신씨는 0.5초간 해당 자판을 바라보면 입력이 되도록 설정했지만, 눈을 깜빡인다거나 시간을 조절하는 등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다. 신씨가 입력한 문장은 ‘안구 마우스가 국내에서 개발돼서 기쁩니다. 안구 마우스는 단순한 IT기기가 아니라 중증장애인에겐 팔과 다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연구가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였다. 30분 넘게 눈을 이용한 탓에 왼쪽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신씨의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닦아주기도 했다. 신씨 어머니 이원옥(68)씨는 “국내 기술력으로 만든 안구 마우스를 쓰게 돼 뿌듯하다”며 “직접 마우스를 이용해 ‘사생활이 생겼다’며 좋아하는 아들을 보니 뭉클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판매 목적으로 아이캔플러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하드·소프트웨어를 개방해 ‘기술기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완성된 아이캔플러스를 개인·사회단체에 무료로 보급할 예정이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눈으로 말해요” 더 편해진 안구마우스… 쇼핑·SNS 척척
입력 2014-11-26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