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바위의 ‘목욕’은 유리 그릇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지난 19일 오후 3시 울산광역시 울주군 대곡리 대곡천. 가교를 건너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 주변에 설치된 비계(飛階)에 이르니 문화재 보존 처리 전문가 5명이 세척 작업에 한창이었다.
비계에 쪼그리고 앉은 전문업체 엔가드 소속 최준현(37)씨는 바위 표면과 틈에 굳어 있는 부유물질과 이끼벌레 등 오염물을 작은 붓으로 세심하게 털어내고 있었다. 붓을 적신 물은 특수약물도 아닌 증류수였다.
문화재청 자문단으로 취재 현장에 동행한 이상목(46) 울산암각화박물관장은 “훼손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가급적 마른 붓으로 털고(건식), 물을 사용하는(습식) 구간도 범위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최근 회의에서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샤워 시키듯 씻어냈다간 초겨울 날씨에 얼 경우 7000여 년 전 선사시대의 암각화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수돗물은 이온이 암각화 셰일층과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증류수를 사용한다”며 “특히 문양이 새겨진 부분의 틈새는 애인 다루듯 조심스럽다”고 말하며 웃었다.
잔 붓질로 씻어내고 말리기를 세 번쯤 해야 끝나는 작업이다. 종일 한 게 도화지 2장 크기(80×80㎝)다. 어깨가 뻐근했지만 호랑이, 들쥐 등의 문양이 깨끗하게 드러나는 걸 보면 힘든 줄도 몰랐다. 반구대암각화는 홍수로 8월 이후 석 달 간 물에 잠겼었다.
열흘에 걸친 ‘암각화 목욕’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모니터링 작업의 일환으로 내달 반구대암각화 3D 스캔을 하는 데 필요하다. 2008년 이후 6년 만이다. 3D 영상을 찍을 때 바위 표면 찌든 때처럼 굳은 흙이 무늬를 왜곡시킬 수 있어서 제거해야 한다. 풍화작용도 늦출 수 있어 암각화 보존에도 중요하다.
반구대암각화는 대곡천 주변에 살던 신석기인들이 자연 캔버스처럼 생긴 거대한 바위(10×4m)에 고래를 비롯한 각종 동물과 사냥하는 장면 등 3백여 점을 새긴 것이다. 고래잡이 암각화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
이 관장은 “알타미라, 라스코 등 구석기 벽화가 밀집된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역의 300여 곳 벽화에 그려진 동물그림이 통틀어 20여종에 불과하다. 반구대암각화는 한 곳에 새겨진 동물이 고래, 호랑이, 여우, 사슴 등 20여종이나 되는 인류의 드문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이곳과 근처 천전리 각석 등을 묶은 대곡천 암각화군에 대해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유네스코가 대상 문화재의 보존 현황과 모니터링에 필요한 기초 자료 및 영상자료를 요구해 3D 스캔은 등재 준비에 필수작업이다. 이 관장은 “2008년 3D 스캔 작업 이후 그림이 새겨진 한 면을 통째로 새로 발견해 6점의 동물그림을 추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울주=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르포] 선사시대 생활 그린 국보 바위 열흘간의 조심스런 ‘붓질 샤워’
입력 2014-11-26 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