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선생님은 어때?” “인간적이세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그럼요. 기계처럼 딱딱하지 않고 그 사람 고유의 뭔가가 있다는 거, 그런 뜻 아녜요?”
고2 남자아이와 한 대화다. 그를 알게 된 곳은 수영장이다. 수영복에 수영모와 수경을 쓰면 서로 구분할 수 없는 그곳에서 틈만 나면 춤을 추기에 나는 그 아이를 ‘춤추는 물고기’라 불렀다. 평균연령 40∼50대인 새벽 시간의 수영장. 또래들은 다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너는 왜 수영장이냐 물으니 “할머니가 몸이 튼튼해야 마음도 튼튼해진다고 다니래요” 그런다.
한번은 그가 좀 더 어릴 때 지도했던 수영 선생님이 물속에서 신나서 춤추는 그를 보고 말했다. “예전에는 저렇게 밝지 않았는데… 신기하네요.”
그 말이 묘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대한민국에서 열여덟이란. 즐거움을 잊고 입시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때. 그때를 기억하면 어두운 기운이 우선 감돌았다. 어떻게 이 아이는 더 밝아질 수 있었을까?
“우연히 들었는데, 예전엔 지금처럼 밝진 않았다며?”
“그런 거 같아요.” “어떤 계기가 있어?”
잠시 생각하다가 춤추는 물고기가 말했다.
“6학년 땐가, 건널목에서 같은 반 애랑 우연히 마주쳤는데, 집에 가는 길이었거든요. 그 친구가 대뜸 ‘너, 나랑 같이 놀래?’ 그러는 거예요. 같은 반이래도 말 한번 해본 적 없는데 되게 쿨하게 그러는 거예요. 계획에 없는 일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잘 웃거든요, 그 친구. 그 뒤로 친해졌고 영향을 좀 받았나 봐요. 어르신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단 걸 알려준 녀석이에요.”
‘얘야, 이 누나는 그렇게 어르신은 아니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고3이 된 후에도 그는 수영을 했고 춤을 췄다. 어떤 날은 학교 야구부 시합 때 관객으로 동원되는 일에 흥분했고 학원은 상술이 심해서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밝음은 여전했다. 다른 동네로 이사한 후에도 이따금 궁금하다. 대학생이 된 춤추는 물고기가 어떤 모습일지.
곽효정(매거진 '오늘' 편집장)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춤추는 물고기
입력 2014-11-26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