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잡자, 대박 잡자… FA 몸값 100억 시대 열리나

입력 2014-11-25 02:56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의 꽃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다. 전력보강을 노리는 구단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자, 선수들에게는 일생일대의 대박을 맞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19명의 선수가 FA를 선언했다. 지난 20일부터 협상이 시작된 올해 FA 시장이 어떤 결과를 맞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총액 500억원을 넘긴 FA 시장은 올해는 600억∼700억 시대를 맞이하는 한편 개인 몸값 100억 시대를 돌파하는 선수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 시장의 영세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돼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선수협 파동으로 생긴 FA제도

한국 프로야구의 FA제도는 1999년 말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의 태동과 함께 도입됐다. 선수들이 '권익 향상'을 내세우며 선수협 결성에 나서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물론 당시 8개 구단은 '선수노조는 시기상조'라며 결사반대했다. 선수협 파동이 2년간 계속됐고 결국 문화관광부 중재로 선수협은 2001년 공식 인정받았다. 이 와중에 KBO는 1999년 말 FA제도를 도입해 선수들을 다독거렸다. 송진우 김동수 이강철 송유석 김정수 등 5명이 첫 자유계약선수가 됐다.

한국이 모델로 삼은 미국 메이저리그 FA제도는 선수노조가 파업 등 투쟁 끝에 얻어낸 것이다. 메이저리그에는 초창기부터 선수의 계약과 이적 등의 권리를 모두 구단이 갖는 '보류조항'이 오랫동안 유지돼 왔다. 선수노조는 경제학자 출신의 쟁의 전문가 마빈 밀러를 첫 노조위원장으로 영입한 뒤 '노예계약'으로 불리던 보류조항을 폐지시켰다. 아울러 1975년 6년을 채우면 선수가 원소속 구단의 독점계약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구단을 선택할 수 있는 FA제도를 따냈다.



#미국과 일본보다 긴 한국의 FA 취득기간

한국 프로야구는 얇은 선수층으로 인해 구단이 선수의 보유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길다. 고졸 선수는 9년, 대졸 선수는 8년을 꼬박 채워야 FA 자격을 얻는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6년과 일본 7년이다. 또한 한국에서 FA 재취득 기간은 4년인데 비해 미·일에선 재취득 기간 규정 자체가 없다. 즉 우리 선수들은 2년 계약을 하면 2년 뒤 다시 FA가 될 수 있다.

해외진출이 가능한 FA는 입단 시점에 관계없이 9년이지만 7년을 채우면 구단 동의 아래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 이때 메이저리그는 비공개 입찰인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야 하며, 일본은 구단들끼리의 이적료 협상으로 이뤄진다.

한국이나 미국 모두 FA 취득 조건으로 1군 등록일수를 따지지만 부상 선수에 대한 부분에서 확연히 갈린다. 한국과 달리 메이저리그에서는 부상자 명단에 오른 기간까지 FA 자격에 포함된다.

구단끼리의 보상 부분도 다르다. 한국에선 FA 선수를 데려간 팀이 전 소속팀에 해당 선수의 전년 연봉 200%와 구단이 정한 보호선수 20명 외 선수를 보상해야 한다. 원 소속구단이 보상선수를 원하지 않으면 전년 연봉의 300%를 지급한다. 이로 인해 구단들은 FA를 앞둔 소속 선수의 연봉을 대폭 올려 다른 구단들이 보상금 부담 때문에 영입을 꺼리게 만들곤 한다. 실례로 SK는 올해 FA 시장 최대어인 최정의 연봉을 올초 5억2000만원에서 7억원으로 인상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보상금이 없는 대신 구단의 손실을 줄여주기 위해 신인 드래프트 우선 지명권 등을 준다. 또 선수가 FA가 되기 이전 소속구단과의 장기계약을 허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15년 FA 역사… 131건 계약에 2149억원

한국의 FA시장은 한화 송진우가 3년간(2000∼2002년) 7억원의 대박을 터뜨리며 막을 올렸다. 이강철도 원 소속구단 해태와 협상이 결렬된 지 이틀 만에 삼성과 3년간 8억원의 계약을 맺었다. 이강철은 사상 최초로 타 구단으로 이적한 FA가 됐다, 이어 LG 김동수가 삼성과 3년간 8억원에 계약하며 세간을 놀라게 했다. 주전급조차 연봉 1억원을 받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3명과 다르게 송유석과 김정수는 쪽박을 찼다. 다른 구단으로부터 입질을 받지 못한 두 선수는 FA 계약 마감일에 울며 겨자 먹기로 원 소속구단과 계약했다. 송유석은 LG와 1년간 7500만원, 김정수는 해태와 5000만원에 계약했다. 김정수의 5000만원은 지금까지 FA 역사상 최저액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계약한지 얼마 안돼 두 선수는 괘씸죄가 적용돼 한화와 SK로 각각 트레이드됐다.

이듬해 10억원의 벽이 깨졌다. 김기태가 삼성에 잔류하면서 4년간 18억원에 사인했다. FA 초창기엔 우승에 목말라있던 부자구단 삼성이 몸값 폭등을 주도했다. 삼성에 ‘돈성(돈+삼성)’이란 기분 좋지 않은 별명이 생긴 이유기도 하다. 홍현우는 해태에서 LG로 이적하며 4년 18억원에 도장을 찍었고 이듬해 양준혁이 LG에서 삼성으로 복귀하면서 4년간 27억2000만원을 받았다. 다음 시즌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한 정수근이 6년 40억6000만원에 계약했다. 2004년 말 삼성은 현대에서 심정수와 박진만을 데려오며 4년간 각각 60억원, 39억원을 내놓았다. 그러나 심정수를 정점으로 선수 몸값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승엽, 이대호 등 A급 선수들이 해외로 잇따라 진출한데다 선수들이 부진했던 탓이다.

FA 몸값이 다시 뛴 것은 2011년 말. 이택근이 LG에서 친정팀 넥센으로 복귀하면서 4년간 50억원을 챙긴 것이다. 모기업도 없어 가장 가난한 넥센이 거액을 선뜻 내놓으면서 FA 시장이 달아올랐다. 김주찬도 4년 50억원에 롯데에서 KIA로 이적했다.

2012년 말부터는 신생구단 NC 때문에 FA 시장이 더 커졌다. 주전급 선수의 경우 보통 50억원이 기준이 됐다. 그리고 지난해 말 강민호가 FA 사상 최고액인 4년간 75억원 조건에 롯데에 잔류했다. 정근우와 이용규는 한화와 각각 4년간 70억원과 67억원에 사인했고 장원삼은 삼성과 60억원에 계약했다. 지난해에만 4명이 8년간 FA 최대 계약으로 남아있던 심정수의 기록을 깨뜨렸다.

지난 15년간 FA 선언을 한 선수는 총 142명이며 이 가운데 해외에 진출한 선수 7명과 어느 팀과도 계약을 맺지 못한 ‘FA미아’ 4명을 뺀 131명이 계약을 했다. 이들의 총 계약금액은 2149억8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첫해 5명 계약에 24억2500만원이었던 것이 지난해에는 15명 계약에 역대 최고액인 523억5000만원이 됐다. 인원 차이도 있지만 액수 면에서 약 21배나 커졌다. 특히 지금까지의 FA 총액 약 4분의 1이 지난해에 집중됐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