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북한인권법안 ‘동상이몽’

입력 2014-11-25 03:38
새누리당 소속 유기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24일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여야가 각각 발의한 ‘북한인권법안’과 ‘북한인권증진법안’의 동시 상정을 선언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새누리당에서 제출한 '북한인권법안'은 열악한 북한의 현재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 정부 역할을 법적으로 명문화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민간단체 주도로 이뤄진 북한 인권 개선 활동에 우리 정부가 적극 개입할 수 있는 폭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법안 목적은 '북한 주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이들의 기본적 생존권을 확보하고 인권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인권 개선의 범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생활영역'이라고 규정해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았다.

주요 내용으로는 우선 통일부 장관이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북한인권 기본계획과 집행계획을 세우도록 한 것이 눈에 띈다. 통일부 장관은 민간 전문가 등 15명 이내로 통일부 산하에 신설되는 북한인권자문위원회 자문을 거쳐 3년마다 북한인권기본계획을 세워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집행계획도 매년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북한 인권실태 파악을 위해 법무부 산하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하게 했다.

여야 간 입장차가 컸던 북한인권재단 설립도 이 법안에는 포함돼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재단의 역할 가운데 '북한 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지원'을 놓고 대북전단 살포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인권재단은 북한의 인권 실태 조사와 연구, 정책개발 등을 담당한다. 통일부 장관이 재단을 지도·감독하며 정부 예산으로 설립된다.

외교부에는 북한인권대외직명대사를 둘 수 있도록 했다. 북한 주민 인권 증진과 인도적 지원을 위해 국제단체나 외국 정부와의 인적교류·정보교환 등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또 북한 인권과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는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이 법을 적용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그동안 심윤조 윤상현 이인제 조명철 황진하 등 새누리당 소속 의원 5명이 발의한 관련 법안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비슷한 내용의 법안들을 하나로 묶어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등 의원 34명의 서명을 받아 김영우 의원이 지난 21일 대표 발의했다. 새누리당 소속 외통위 관계자는 "법안 발의자들뿐 아니라 당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만든 당론 성격의 법안"이라고 했다.

김무성 대표도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이 여야 합의로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킬 최적의 타이밍"이라며 "국제사회 노력에 발맞춰 10년간 묵혀온 북한인권법을 반드시 통과시켜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보호에 대한 단호한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심재권 의원이 지난 4월 대표 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은 현재의 북한 인권상황 개선보다는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국내외 정치지형 변화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장하자는 것도 핵심 대목이다.

이 법안은 북한 주민의 생존권과 자유권 증진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자유권 증진은 남북 인권대화를 통해, 생존권 증진은 인도적 지원으로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정치연합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는 북한 주민과 제3국에 거주하는 북한 이탈주민, 북한 내 정치범·납북자·국군포로의 자유권 증진을 위한 남북대화를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또 북한 주민과 제3국 거주 북한 이탈주민 보호를 위한 노력, 이들을 위한 재원의 지속적·안정적 마련도 정부의 책무로 규정된다.

또 가칭 '인도적지원협의회'와 '인도적지원사무소' 등을 통일부 산하 단체로 설립토록 했다. 인도적지원협의회는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 사업을 협의·조정하는 기구로 북한 임산부 및 영유아에 대한 건강증진 프로그램, 식량, 의약품 등 각종 생필품 및 의료품 지원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인도적지원사무소는 이산가족 서신교환과 상봉·송환 등을 맡게 된다.

그러나 새누리당 법안이 담고 있는 북한인권재단 설립이나 북한인권대사 신설 등의 방안은 새정치연합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새정치연합이 설치를 제안한 인권정보센터는 새누리당이 제시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 법안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북한 인권 관련 법안 제정에는 동의하지만 대북전단 살포 단체에 대한 지원은 용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북한인권재단의 목적이 순수한 인권 개선 관련 연구와 정책 개발이 아니라 대북전단 살포 단체에 대한 예산 지원의 근거가 될 것이라는 논리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비대위원은 24일 비대위 회의에서 "정부 여당이 대북전단 살포를 지원하는 '북한인권법안'을 밀어붙인다"며 "대결주의적 대북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 역시 "국제사회의 제재나 압박만으로는 북한 인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여당을 압박했다.

한편 새정치연합의 '북한인권증진법'은 구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합당한 뒤 당의 중도노선 강화 일환으로 입안돼 국회에 제출됐다. 당시에는 법안 제출 자체에 대한 당내 반감이 높았지만, 사실상 당론 발의된 뒤 뚜렷한 반대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최승욱 김경택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