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보여드릴 게 있어요.”
영국의 유명 여성 무대 디자이너이자, 무대 미술감독인 파멜라 하워드는 77세의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몸놀림이 가벼웠다.
23일 그가 묵고 있는 서울 중구 그랜드 엠베서더호텔의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때도 보여줄 게 있다며 여러 차례 자신의 방에 다녀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양경학 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한국의 ‘연’ 그림을 보여주며 “색과 구도가 아름답다”며 감탄사를 연발했고 2010년 체코에서 무대 연출을 한 ‘브로첵씨의 달로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디자인 철학을 설명했다.
그는 예술인력개발원이 영국과 유럽권 무대예술의 선진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공연예술전문가 4인을 초청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두 번째 연사로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하워드는 1960년대부터 유럽 전역과 미국을 오가며 비제의 ‘카르멘’을 비롯한 정통오페라부터 ‘결혼(The Marriiage)’ 등 실험적인 연극 공연 무대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연극부문공헌 대영제국훈장(OBE)을 받기도 했다.
18∼21일 나흘간 무대 디자이너와 미술감독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상대로 강연한 그에게 한국 젊은이들을 만난 소감을 물었다. 하워드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만 의지할 뿐 상상력은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저항하는 게 필요하다는 조언했다.
“저는 사람들에게 ‘예(Yes)’ 또는 ‘아니오(No)’라는 답을 듣기 전에 제가 제안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2011년 체코의 브르노 극장에서 ‘결혼’에 대한 무대 디자인을 얘기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험적 무대라며 반대했어요. 그때 저는 제 아이디어가 담긴 수백 장의 무대 디자인 그림을 그려 그들에게 보여줬고 설득에 성공했지요.”
하워드는 또 무대를 디자인할 때 문화나 역사, 사람보다는 기술적인 내용으로 접근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강연을 하면서 짧은 문장을 주고 그 문장 뒤에 있는 스토리를 생각하게 한 뒤 그림을 그려보라고 시켰는데 매우 어려워했다”며 “방법을 설명해 주자 그들의 표정이 달라졌다”고 소개했다.
그럼에도 하워드는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의 문화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차별화돼 있어요. 양 원장이 준 ‘연’ 그림을 보세요. 균형 잡힌 컬러와 패턴 그리고 형태. 얼마나 아름다운 가요.”
그는 무대 미술과 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사인이나 표식을 만들라고 권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되려고 하지 말아요. 각자 자신만의 사인(개성)을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저항하세요. 예술가의 삶은 혁명가여야 합니다. 피카소도 그의 인생에선 혁명가였어요. 용기를 가지세요.”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인터뷰] “젊은이라면 관습에 저항하세요”
입력 2014-11-25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