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23일 오후 7시 34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공연 기획사 대표가 올라 허리를 숙였다.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 2000여명은 화도 내지 않았다. 웃음이 터졌고 박수도 나왔다. 남편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주부 김귀옥(54)씨는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안 나오더라”고 했다. 오후 7시부터 열릴 예정이었던 세계 정상급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내한공연은 그의 건강 문제로 공연 시작 30분이 지나서야 취소됐다.
공연계 안팎에서 책임 소재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카레라스의 무책임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있다. 몸이 아픈 건 이해되지만 3년을 기다린 팬을 생각했다면 직접 무대에 서서 사과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카레라스는 2011년에도 내한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취소한 바 있다.
기획사가 공연 취소 사실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아 관객들이 낭패를 봤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 공연장에선 시작 2시간 전부터 취소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한 네티즌은 “공연 한 시간 전엔 무대 위에 악기를 세팅해야 하는데, 직전까지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비싼 티켓 값까지 뒤늦게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 공연의 VIP티켓은 44만원이었다. 같은 시간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또 다른 세계 3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공연의 VIP석 가격은 25만3000원이었다.
카레라스는 건강 상태가 나빠 한국 공연 뒤 일본에서 진행하려던 공연도 취소했다. 24일 출국하면서 출연료도 모두 반납했다. 건강을 회복하는대로 출연진까지 함께 선정해 한국을 재방문하겠다는 의사도 전달했다.
가수나 배우가 몸이 좋지 않아 공연을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공연자의 건강상태도 모른 채 무리하게 추진해 돈을 벌어 보겠다는 기획사의 ‘과욕’이 자제되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황당한 공연 취소는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윤경 문화체육부 기자
[현장기자-서윤경] 개막 30분 뒤에야 취소된 카레라스 공연
입력 2014-11-25 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