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성자 (2) 첫 맞선 자리의 남편 “세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입력 2014-11-25 02:29
정문현 PCV그룹 회장과 정성자 권사 부부의 1978년 9월 5일 결혼식 사진. 서울 서현교회에서 고 박경남 담임목사의 주례로 올린 결혼식은 맞선을 본 지 일주일 만에 올린 예식이었지만 많은 친지와 친구의 축복 속에 진행됐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음…, 바로 세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맞선 자리에 나온 남자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열네 살에 가족을 따라 미국 이민을 간 뒤 스페인어와 영어를 주로 썼다는 그는 한국말이 서툴렀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의 강한 햇빛을 받았는지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그럴 듯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질문을 던지는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인생의 사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 번째 질문에 깜짝 놀랐다. 맞선 자리에서, 그것도 처음 보는 여자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애써 여유를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나 생각했다. 딱히 이렇다 할 이끌림은 없었지만,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고국 땅까지 찾아온 교포 청년을 차갑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질문은 바로 몇 주 전 교회학교 중등부 공과시간에 내가 학생들에게 물으며 가르쳤던 내용이 아닌가.

“인생의 목적요? 그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또 영원토록 그분을 즐겁게 하는 것 아닐까요.”

성경공부 책에 나온 내용을 떠올리며 대답하는 내게 그 남자는 원하던 답을 얻은 사람마냥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원래 선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선교사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네, 말씀하세요.”

“음…. 저는 앞으로 선교사를 돕는 후원자가 되기 위해 사업을 할 겁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물질의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그러면 저는 그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쓸 것인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 황당했다. 이 남자는 이제 막 월급쟁이가 된 사람이 아닌가. 게다가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대학을 은행 빚으로 겨우 졸업한 사람이라던데…. 듣기에 따라선 맞선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허세로 들릴 법도 했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과대포장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믿음이랄까. 마치 부모가 자신을 위해 앞으로 이렇게 해주리라 철석같이 믿는 어린아이의 순진한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물질 축복 많이 받으면요? 그러면 선교사를 돕고 살아야겠지요.”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지그시 나를 바라봤다.

“세 번째 질문은 뭔가요?”

이번엔 내가 질문을 재촉했다. 세 가지 질문을 하는 남자의 속내가 궁금해진이다.

“아, 예. 저는 형제가 다섯입니다. 그런데 다 크고 보니까 다섯도 적적하네요. 많지가 않아서요. 그래서 음…. 저는 결혼하면 적어도 아이 다섯은 낳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시 우리나라는 두 자녀 낳기 운동을 지나, 한 아이만 낳기를 권장할 정도로 출산억제 정책을 펼치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계속 피아노 공부할 생각만 해왔지,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해 본적이 없었던 내게는 가장 어이없고 난감한 질문이었다. 어쨌든 질문을 받았으니 답을 하긴 해야 했다.

“다섯요? 호호호, 하나님께서 주시면 낳아야죠.”

반은 농담으로 대답한 내 말을 그 남자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길지 않았던 시간, 마치 면접이라도 한 것 같던 세 가지 질문과 답변들. 그것이 내 인생을 움직이는 세 가지 중심축이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맞선 자리를 끝내고 돌아와서 “어땠냐?”는 어머니의 물음에도 담담하게 말했다. “뭐, 그냥 싫지는 않았어요.”

그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사람 정도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됐다. 싫지 않으면, 그것으로 된 거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