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타결된 신(新)한울원전 건설 협상 성공의 핵심 키워드는 양보와 소통이었다. 타결의 두 주역인 조석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과 임광원 경북 울진군수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타결하는 것이 윈-윈이었다”고 단언했다. 조 사장은 “모든 문제를 떠나 타결하는 것이 사업자인 한수원이나 울진군 모두가 윈-윈하는 것이라는 데 서로 공감했다”며 “상대방 입장을 먼저 이해하며 협상에 임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임 군수도 “무조건적인 요구가 아니라 대승적 양보가 중요했다”며 “협상을 타결하지 못했다면 지원금 규모만 늘어 정부도 더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신한울원전 건설 협상 타결은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결사의 섬뜩한 구호가 난무하는 격렬한 반대 ‘투쟁’과 경찰·용역대의 무차별 ‘진압’이라는 구도에 익숙한 국민들에게 원전 건립에 대한 ‘협상 타결’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울진군이 1999년 원전 유치 의사를 표명한 뒤 지루한 협상은 15년이나 계속됐다. 지원금액도 정부(600억원)와 울진군(5000억원)의 차이가 컸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협상은 좌초 위기도 맞았다. 하지만 총리와 장관, 한수원이 총동원돼 전향적인 지원을 밝힌 정부와 대승적인 양보를 내걸며 군민들을 설득한 울진군은 15년간의 협상을 마무리하며 ‘울진 방식’이라는 새로운 타협 모델을 만들어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한쪽이 밀어붙이거나 다른 쪽이 돌아서면서 충돌과 폭력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며 “정권이 수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협상을 유지했다는 것은 중요한 선례”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은 201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하다. 세월호 참사 해법을 둘러싼 7개월간의 전 국가적 갈등,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대립 등을 고려하면 사회갈등 지수는 대폭 상향됐을 가능성이 크다.
‘울진 방식’은 다른 갈등 사례에서도 모범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원전은 고리 1∼4호기, 한울 1∼6호기 등 모두 23기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앞으로 10기 이상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해야 하는데,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의 원전 건설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협상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고, 경북 경주의 월성1호기는 운전 지속 논란에 휩싸여 있다. 경남 김해와 밀양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갈등, 서울·경기도와 인천의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논란, 안양교도소 이전 등도 폭발 일보직전의 화약고들이다.
각자의 논리와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양보와 소통 외에 다른 해법은 없다는 게 신한울원전 협상 주역들의 평가다. 계명대 사회학과 임운택 교수는 “신한울원전 협상이 우리 사회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도영 유성열 기자 dynam@kmib.co.kr
“양보하니 신뢰… 믿으니 벽이 무너졌다”
입력 2014-11-24 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