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3주기 12월 17일 딜레마’

입력 2014-11-24 02:35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92) 여사가 북한 방문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면담 시점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북 타이밍’에 따라 당초 목적인 인도주의 취지에 정치적 의미가 덧칠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남북한 당국 그리고 이 여사 모두 얽혀 있는 ‘방북 시점 딜레마’다.

가장 부담스러운 일정은 다음 달 17일을 전후해 북한을 다녀오게 되는 경우다. 17일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라서다. 북한은 은근히 이 시점을 택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 여사 방북 문제를 북한과 협의하기 위해 개성공단에 다녀온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은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떤 시점을 원하느냐’고 북측에 물었더니 ‘계기가 됐을 때 빨리 오면 좋지 않냐’고 되묻더라”고 전했다.

북한 입장에선 2011년 김 위원장 서거 당시 조문했던 이 여사가 3주기에 다시 평양을 찾는 모양새를 만들고 싶어한다. ‘체제 선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유엔이 북한인권결의안을 처리하면서 국제사회의 ‘외톨이’ 신세가 된 마당에 이 여사가 ‘국상(國喪)’에 호응해주면 활용가치가 크다.

정부 관계자는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은 삼년상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며 “과거 김 위원장도 ‘김일성 주석 3주기’ 이후 헌법 개정을 통한 권력승계를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 사망 다음날부터 김 제1비서의 실질적 통치가 이뤄졌던 만큼 집권 4년차를 홍보하는 데도 이 여사를 동원할 수 있다. 북한은 김 제1비서의 ‘유일 영도체계’와 ‘안정적 통치’를 선전하는 데 악용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나온다.

3주기 걸림돌을 피하더라도 12월에서 2015년 1월 사이에는 또 다른 북한 정치일정이 걸린다. 1월 1일에는 북한의 향후 1년 대남 정책을 가늠하는 신년사가 발표된다. 김 제1비서의 생일인 1월 8일을 전후해 방북하면 ‘남한의 축하 사절’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2월 16일은 김 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로 북한은 이날을 ‘8대 명절’로 기리며 ‘3대 세습’ 정당성을 옹호하는 이벤트로 활용한다.

이 여사 측은 방북 시점의 정치적 의미와 인도주의라는 당초 방북 목적이 서로 묘하게 ‘불협화음’을 빚으면서 일정짜기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 영·유아에게 털모자, 목도리 등 겨울용품을 전달하기로 한 만큼 12월∼2015년 1월이 방북의 적기지만 정치적 해석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각종 기념일을 다 피해야 한다. 그러면 막상 ‘방북 가능한 날’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김대중평화센터 측은 일단 고령인 이 여사 ‘건강’을 최우선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또 정부가 부담스러워하는 날짜는 피한다는 방침도 마련했다. 센터 관계자는 “이 여사가 부담스러운 시점을 고집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올해 안에 방북이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방북 허가권을 쥔 정부도 나름의 딜레마를 겪는다. 정부 일각에서는 “인도주의 지원은 허용하겠다고 해놓고 정치적 의미를 예단해 불허하면 ‘원칙을 깼다’는 지적을 받는다”는 말이 나온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