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 개인정보 유출시대’를 절감케 하는 범죄가 또 적발됐다. 휴대전화가 없는 취약계층의 개인정보만 모아 스마트폰 수천대를 불법 개통한 뒤 팔아넘긴 사기 조직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이렇게 개통된 스마트폰은 소액결제 사기, 스팸문자 발송, 피싱(가짜 웹 사이트로 금융정보를 빼내는 사기) 등에 활용됐다. 그 결과 양로원의 독거노인이 영문도 모른 채 1000만원이 넘는 통신요금 폭탄을 맞기도 했다.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장)은 유출·위조된 사회 취약계층의 개인정보로 스마트폰 약 6000대를 불법 개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사기)로 김모(40)씨 등 25명을 구속 기소하고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들은 2011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개인정보 판매상-신분증 위조책-휴대전화 개통책-장물업자로 연결되는 조직을 갖춰 활동했다. 통신사가 입은 피해 규모만 40억원에 달한다.
타깃은 휴대전화를 개통하지 않은 ‘무회선자’였다. 휴대전화 개통책은 개인정보 판매상에게 사들인 주민등록번호들을 일일이 조회해 무회선자들의 정보를 추렸다. 미리 결탁한 통신사 대리점을 통해 휴대전화 개통 여부를 쉽게 조회할 수 있었다. 대개 지방의 병원이나 양로원에서 지내는 노인이었다.
추려진 무회선자 개인정보는 신분증 위조책에게 전달됐고, 이 정보는 장당 40만원짜리 위조 주민등록증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분증 위조책은 흰색 플라스틱에 무회선자 인적사항을 인쇄하고 실제 주민등록증처럼 홀로그램까지 만들어 넣었다. 스캔 작업까지 마치고 난 뒤에는 진짜 주민증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주소지는 일부러 허위로 기재했다. 검찰 관계자는 “요금 청구서가 날아가면 바로 신고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위조된 주민증을 이용해 휴대전화 개통책은 스마트폰을 6000여대나 개통했다. 할부 약정서만 쓰면 돈을 거의 안 들이고 80만∼100만원짜리 고가 단말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명의도용 피해자 1명당 4대까지 개통된 사례도 있다. 무회선자 조회에 일조한 대리점들은 통신사로부터 개통 수수료를 건당 20만∼40만원씩 챙겼다.
개통된 휴대전화들은 유심(USIM)칩을 뺀 채 장물업자에게 50만∼60만원에 덤핑 판매됐고 중국 등 해외시장으로 빠져나갔다. 유심칩은 20만원에 판매됐는데 중고 단말기에 꽂혀 ‘대포폰’이 됐다. 이런 대포폰은 불법 스팸 문자와 보이스피싱에 쉬지 않고 활용돼 피해자들은 수백만∼수천만원의 통신료 납부 독촉을 받았다. 한참이 지나 통신사의 채권추심을 받고서야 명의 도용 사실을 알게 된 무회선자가 많았다.
무회선자들은 통신사로부터 요금은 구제받았지만 각종 신고와 수사기관 진술 등에 정신적·시간적 피해를 입었다. 통신사들은 휴대전화 개통 시 본인 확인 절차를 보완하는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 검찰은 신분증 위조 사범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을 예고했다. 검찰 관계자는 “행정자치부에서 운영하는 ‘1382 서비스’를 이용하면 일반인도 쉽게 신분증 진위 확인을 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독거노인이 통신료 1000만원 맞은 까닭은
입력 2014-11-24 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