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의 판이 바뀌고 있다. 지도부는 중국의 초고속 성장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경제 정책으로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핵심은 성장 축을 소비, 서비스업, 과학기술 중심으로 옮기는 것이다. 지난달 10일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해 과감한 경제 개방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허난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 경제가 신창타이(新常態)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며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경제의 흐름에 대해 말을 아끼던 시 주석이 지금보다 한 단계 낮은 성장률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직접 언급한 것이다. 신창타이는 '새로운 정상적 상태'를 뜻하는 '뉴노멀(new normal)'의 중국식 표현이다. 뉴노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에 저성장, 저소비, 저수익률 같은 현상이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을 지칭한다.
중국은 금융위기 직후에도 4조 위안의 재정지출과 소비보조금 지급 등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동원해 성장률 8%를 지켰다. 그러나 2009년 후반부터 물가·집값 급등, 소비시장 경기 급등락, 생산능력 과잉 등의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고속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2011년으로 접어들면서 성장률 하락세가 뚜렷해졌고, 2012년부터는 8%에 못 미치는 분기 성장률이 이어졌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경제성장률이 8% 아래로 머문 적은 세 번 있었다. 1979∼1981년 2차 오일쇼크, 1989∼1990년 인플레이션 대응 실패, 1998∼1999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다. 당시엔 외부 충격이나 정책대응 실패가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근본 요인들이 문제다.
일단 노동연령(15∼59세) 인구가 줄고 있다. 2020년이 되면 2010년보다 2900만명 정도 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부양비율도 2012년 이후 계속 증가세다. 이는 현재 30% 수준인 가계저축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기술력을 향상시킬 여지도 줄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그동안 선진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 배우는 ‘후발자 이득’을 톡톡히 누려왔지만 이 같은 ‘기술 캐치업 단계’가 거의 끝났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런 상황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카드로 서비스업, 기술집약 산업, 중서부지역 등 그동안 억눌렸던 부분들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지도부가 주창하는 경제 산업 구조의 업그레이드는 이처럼 성장 축을 옮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어느 때보다도 소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성장 축을 과거 수출과 투자 중심에서 소비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꾸준히 오르던 인프라·부동산 투자는 2015년을 끝으로 하락세로 전환될 전망인 반면 소비 비중은 2011년부터 상승세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지난달 21일 기준금리를 2년여 만에 전격 인하한 것도 소비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급격히 부진해지자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인민은행 측은 “미세조정에 나선 것일 뿐 신중한 통화정책 유지라는 통화정책의 틀은 변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주춤하고 있는 임금 상승률이 발목을 잡고 있다. 임금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자 중국인들의 소비 성향이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이 중국 인터넷포털 ‘바이두’의 검색지수를 분석한 결과, 공격적인 소비패턴을 상징하는 ‘유행’의 검색지수는 빠르게 떨어지는 반면 보수적 소비심리를 보여주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검색지수는 상승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소비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내년 근로자 평균 임금을 2010년보다 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성장 동력의 축을 돈을 쏟아붓는 것에서 과학기술 혁신 쪽으로 옮겼다. 중국 지도부가 반부패 개혁을 시도한 것도 이 같은 신창타이 개혁을 위해선 기존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잠재워야 했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요소를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이를테면 농촌의 유휴인력을 도시로 옮겨 생산성을 높이는 식이다. 2000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서부대개발 선언 이후 중국의 성장 축은 중서부 쪽으로 이동해 왔다. 동부와 서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격차는 2000년 2.4배에서 지난해 1.8배까지 좁혀졌다. 중서부 지역 개발이 효과를 거두면 일부 도시들이 새로운 소비 중심지로 부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차가워지고, 지방정부의 부채가 늘고 있는 것은 위기 요인이다. 큰 문제는 금융위기(2009∼2011년) 직후 경기 확장기에 사상 최고 수준으로 누적된 과잉 생산능력과 과잉 재고다. 제철(73%) 철강(72%) 자동차(70%) 등 20여개 업종은 생산능력 이용률이 60∼7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원료 부품 등의 재고도 크게 늘면서 국가총자산 대비 재고자산은 2007년 4.9%에서 2011년 6.7% 수준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한·중 FTA가 해외 시장을 확대해 이런 과잉생산·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성장률은 과거에 비해 주춤하고 있지만 지난해 GDP 증가액이 한국 전체 GDP의 78%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거대 시장이다. 동시에 중국 기업 수도 10년 만에 배 가까이 증가하면서 경쟁이 과열됐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그동안 사문화됐던 기업 파산 및 퇴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이 연구위원은 “중국의 소비시장은 커지지만 사업 환경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며 “중국 시장 판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월드 이슈] 신창타이 시대… 쑥쑥 크던 中 경제 판이 바뀐다
입력 2014-12-02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