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전 이 칼럼란에서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한·일 정상회담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박근혜·아베 간 스탠딩미팅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는 박 대통령의 애틋한 마음을 감안한다면 못할 바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망은 적중했다. 10일 밤 APEC 정상만찬 자리에서 바로 옆에 앉은 한·일 정상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이어 미얀마, 호주로 이어지는 정상들의 다자외교 현장에서도 두 정상은 틈틈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2012년 5월 이후 열리지 못한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를 정식 제안했다. 이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나아가 청와대는 3국 정상회담 준비 차원에서 연말을 전후해 3국 외교장관 회담 개최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다자외교가 진행되기 전부터 거론됐던 일본 중의원해산이 아베 신조 총리 귀국 후 구체화됨에 따라 3국 외교장관 회담 개최는 불투명해졌다. 다음달 14일로 예정된 총선거와 새 내각 출범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외교 문제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겠다.
사실 박 대통령의 한·중·일 정상회담 제안은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문제를 우회하려는 입장에 불과하다. 일본과 대화는 하는 편이 낫겠다는 쪽으로 바뀐 듯하지만 전제조건은 여전하다. 외교부는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일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원칙론을 여전히 붙들고 있고, 중국 외교부 역시 “일본이 3국의 협력과 발전을 위해 실질적인 성의를 표해야 한다”며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반면 아베 총리는 강경 일변도다. 국회 해산 배경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겉으로는 올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면서 소비세 추가 인상 유보와 아베노믹스에 대한 신임을 국민에게 묻겠다고 했다. 하지만 속으론 아직까지 높은 지지율을 이용해 장기집권을 꾀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평화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세적으로 밀어붙이려는 것 같다.
아사히신문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회 해산을 ‘납득한다’는 25%, ‘납득할 수 없다’는 65%였다. 야당들조차 소비세 추가 인상 보류를 주장하는 판에 굳이 국회 해산까지 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총선거에서 아베의 승리를 예상한다. 유권자들이 야당을 못 미더워한다는 게 이유인데, 바로 이 점을 아베 총리가 파고든 셈이다.
아베 정권의 보수·우익적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3국 정상회담 재개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역내의 불협화음은 쉽게 잦아들기 어렵겠다. 당장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 정책은 집요하게 확장될 것이고 보면 한국의 수출 위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요즘 일본 내에서 아베노믹스의 실패가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으나 한국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유리한 얘기도 아니다. 아베노믹스의 실패, 즉 일본경제의 파탄은 세계경제에 거대한 폭풍으로 작용할 것이며 한국은 그 풍파를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엔저 공세를 막는 것도, 세계경제의 추락을 견뎌내기도 쉽지 않다.
공존 방안이 필요하다. 한·중·일 정상회담 운운하며 우회하기보다 한·일 직접 대화를 확장하는 정공법이 낫다. 이미 양국 정상회담 개최 여부는 문제를 수습하는 데 크게 도움을 못 줄 지경이다. 오히려 양국 간 다양한 대화 채널을 가동하는 편이 좋겠다. 과거사든 독도 문제든 의견이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보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한·중·일 FTA 등 함께 역내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적 지혜가 필요하다.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니 하는 것도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질적인 대화가 이어진다면 문제는 풀리기 마련이다. 폭주하고 있는 아베의 확신범적인 행태를 이쯤에서 붙들어 두기 위해서도 그를 대화의 틀 안에 잡아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아베의 공세 어떻게 대응할까
입력 2014-11-24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