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유럽, 심상찮은 사이버戰 조짐

입력 2014-11-22 04:47

이번엔 유럽에 사이버 전쟁 기운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가 배후로 추정되는 사이버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서방 국가들이 사이버 테러 대응 훈련 강화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와 서방국가들의 ‘전운’은 사이버상으로도 점차 확대되는 분위기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사이버 전쟁 훈련을 벌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나토가 러시아와의 국경에서 50㎞가량 떨어진 에스토니아 동부 도시 타르투에서 28개국 80개 기관에서 파견된 670명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이 참가한 가운데 사이버전쟁에 대비한 훈련을 벌였다”고 전했다.

이번 훈련은 과거 나토가 했던 훈련보다 2배 이상 큰 규모다. 훈련이 끝나기 전까지 이 사실을 공개하지도 않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가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상황에서 나토는 사이버 전쟁 대비 태세를 비밀에 부친 것이다.

이는 군사적 충돌이 전부였던 과거 냉전시대와 달리 해킹으로 정보를 빼내거나 상대방의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것도 치명적인 공격이 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한다. 옌스 슈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사이버 공격은 재래식 무기 공격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면서 “사이버 공격은 중요한 사회기반시설의 작동을 멈추게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작전에 큰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토의 우려는 최근 들어 러시아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사이버 테러가 끊임없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커는 미국과 유럽의 방송사나 국가기관, 국제기구의 서버에 침입해 업무를 마비시키는가 하면 금융기관이나 유통체인의 홈페이지 등을 해킹해 대규모 고객 정보를 유출시키기도 했다. 올 초에는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방위위원회도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사이버 공격이 빈번한 만큼 사이버 전쟁 훈련 역시 과거에 실제로 발생했거나 미래에 발생 가능한 상황을 시나리오로 삼고 이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예를 들면 해커들이 “전쟁에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나토 사령관의 사적인 대화를 해킹하고 나서 이를 국제적 권위지에 흘려 나토를 곤경에 빠뜨리는 상황이 있었다. 이는 지난 2월 키예프에서 빅토리아 뉼런드 미국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와 제프리 파얏트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의 전화통화 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이 언론에 유출된 상황과 흡사하다.

나토 고위 관계자는 “훈련에 사용된 시나리오들은 현실 상황에 기반하거나 이미 실제로 나토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사이버 테러에 대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실제로 사이버 테러를 겪거나 훈련하는 것뿐인데, 훈련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