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민영] 워킹맘으로 살아가기

입력 2014-11-22 02:52
오전 9시15분. 한참 오전 보고를 준비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급한 전화가 아니면 안 받으려고 보니, 발신자 이름이 ‘○○이모님’이다. 이모님이란 출근하는 엄마 아빠 대신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입주 도우미시다. 6살 큰아이 유치원 버스가 올 시간이 다 됐는데, 어지간해서는 전화 잘 안 하시는 이모님의 전화는 불길하다. 바쁜 시간이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마디가 “어휴, 얘 이러면 정말 나 너무 힘들어요”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추운 날씨에 여름 원피스를 입겠다고 들고 나온 딸이 ‘추워서 안 된다’고 하자 억지를 쓰기 시작하더니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했단다. 엄마와 통화하라고 하자 혼날 것 같아서인지 수화기 너머 울며불며 싫다고 소리 지르는 딸아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필 정부부처 취재를 위해 세종시까지 내려와 있다. 집까지 2시간 넘게 걸리는 이곳에서 전화를 안 받겠다고 버티는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전화를 끊었다.

급한 일을 마치니 온갖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찬다. 유치원을 한 번 빠지는 거야 사실 별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내내 기분 좋던 아이가 왜 갑자기 그랬는지 걱정이 됐다. 왜 이 녀석은 6살이나 돼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던 건가 화도 났다. 안 그래도 둘째를 더 예뻐하시는 이모님과 더 거리가 벌어지겠다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번엔 생각이 많아지면서 종일 ‘쫑알거리는’ 우리 딸의 이야기를 평소에도 잘 귀 기울여주시지 않던 이모님이 미워진다. 그러나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답답함과 분노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늘 그렇듯.

내가 집에 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엄마라면 일단 그 녀석이 좋아하는 다른 대안을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까지 난리를 피우기 전에 ‘타협’이 됐을 것이다. 혹여 ‘협상’이 실패했더라도 어떤 이유로든 저런 ‘난동’을 피웠다면 그 자리에서 매를 들어서 따끔하게 혼이라도 냈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교육 서적’들이 조언하듯 아이가 잘못했을 때 그 자리에서 즉각 혼내주는 것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밤 9시가 다 돼 집에 들어가 종일 엄마를 기다리다 웃으며 달려 나온 딸에게 웃음 대신 굳은 표정으로 일단 혼을 내는 것이었다. 행복한 기분으로 책 읽으며 잠잘 준비 해야 할 시간에 아이 ‘눈물’을 빼며 나도 울었다. 정답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일하는 엄마’로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버텨가고 있다. 11년차 기자, 6살 딸과 3살 아들의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은 순간은 매일같이 발생한다. 애초부터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우는 소리’ 따위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구차하리만큼 사소한 사건들은 다 관두고 싶은 ‘고비’가 되는 게 현실이었다. 감기 걸린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가야 한다든지, 평일 오후 6시까지만 받는 유치원 원서 접수라든지, 선생님 상담이라든지, 이유는 참 다양도 하다.

중학생 때부터 꿈꿔왔던 ‘기자질’을 내가 꿈꿨던 만큼 ‘치열하게’ 하지 못하는 것도 꽤나 자주 억울해지는 일이다. 이모님의 가족 모임 때문에 주말 근무를 조정해야 한다든지, 취재원과의 저녁 자리가 만들어질 때마다 애들 얼굴이 떠오르는 ‘불편함’은 이미 일상이다. 그래도 양쪽 다 버릴 수가 없었다. 하나는 죽어도 포기 못할 내 행복의 원천이고, 다른 하나는 남들은 비웃을지 몰라도 내 나름의 사명과 보람, 그리고 ‘밥줄’이기도 하다.

어느새 이 ‘양다리’가 7년차에 접어든다. 초기에는 양쪽 모두에게 양다리를 들키기라도 할까봐 몸뿐 아니라 마음도 고생했다. 7년차 양다리가 달라진 게 있다면 ‘양다리’를 현실로 인정했다는 점일 게다. 아이들에게 내 빈자리를 안 들킬 수 없지만, 큰 구멍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저녁식사쯤은 포기하는 식이다. 아침에 엄마를 못 보여주는 대신 밤에 한 시간 정도라도 하루 일을 이야기하고 마음껏 보듬어주고 다음날을 함께 준비해 주기 위해서다. 유치원 일정 등이 장애물이 되는 날엔 점심시간에 서울(기자실)과 경기도(집)를 왔다 갔다 하는 ‘홍길동’이 되기도 한다. 회사에서도 물론 ‘애엄마’ 티가 안 날 수 없다. 마음 써주는 선배들이 있어 배려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일감을 회피하지 않는 것으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적지 않은 워킹맘들이 아마도 나 같은 양다리를 ‘최선’이라 여기며 유지할 것이다. ‘양다리’의 괴로움을 ‘최선’으로 포장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 의기소침해 괴로워하던 내게 남편이 건넨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요즘 느끼는 건데, 당신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우리 애들 엄마로서도, 기자로서도 그 정도면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일도 잘하면서 애도 많이 낳으라’는 사회에서 워킹맘이 바라는 건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양다리를 욕심 아닌 최선으로 봐주는 시선 아닐까.

조민영 경제부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