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민개혁 강행] 레임덕 본격화 전에… ‘오바마표 업적 쌓기’ 승부수

입력 2014-11-22 02:31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일 오후(현지시간) 특별방송에서 이민개혁 행정명령 발동의 합법성과 불가피함을 설명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자신의 행정명령은 합법적일 뿐 아니라 민주·공화 양당 소속의 전직 대통령들이 했던 것과 같은 ‘상식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화당 소속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이 불법이민자 구제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동한 사례를 거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미국의 이민 시스템이 무너졌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이민 시스템이 잘 작동하게 하려는 내 권한에 의문을 품거나 의회가 실패했던 일을 하고자 하는 내 행동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의원들이 있다면 내 대답은 이민개혁법안을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 행정명령은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주도의 미 의회가 그동안 이민개혁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아 할 수 없이 행정명령을 발동하게 됐다는 논리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이민개혁 지지론자들의 행정명령 발동 요구를 수차례 ‘불완전하고 임시적’이라는 이유로 기피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행정명령 발동을 통한 오바마의 이민개혁안에 대한 반대(48%)가 찬성(38%)보다 많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11·4중간선거 직후 공화당이 강력히 반발하는 이민개혁안을 밀어붙이는 ‘강수’를 둔 데는 복합적인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불 수 있다.

우선, 선거 부담이 없는 재선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임기 내 업적(legacy)’을 강하게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강경파와 온건파 간 당내 갈등 등 불확실성이 많고 시간이 걸리는 공화당과의 협상보다는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인 행정명령을 통해 조속한 성과를 내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임기가 2년 남았지만 가속화될 ‘레임 덕(권력누수 현상)’을 감안하면 자신의 주요 국정 어젠다가 열매를 맺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막후 협상과 상대방에 대한 설득보다는 지지층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를 선호해 온 오바마의 정치 스타일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개혁안 등 정치적인 함의가 큰 의제를 공화당과 싸워 정면 돌파하는 게 자신과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측면도 있다. 불법이민자 대부분은 중남미 출신인 히스패닉계이며 민주당의 주요 지지층이다. 특히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인구 증가율이 높은 인종집단으로 갈수록 더욱 강력한 정치적 파워를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이민개혁안은 히스패닉계의 민주당에 대한 충성심을 한층 강화시켜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장기적으로 2016년 대선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행정명령을 통해 구제를 받게 되는 불법 이민자들은 차기 대선에서 확실한 민주당 표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이민개혁안을 강력히 비난하는 공화당도 향후 정치 지형을 생각하면 ‘대응 수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경제에는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이번에 혜택을 보는 불법이민자들이 주로 히스패닉계로 저학력·저임노동자여서 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경제전문 포천은 수백만의 경제활동인구가 합법적인 경제활동에 가담하게 되고 세금을 납부하게 됨에 따라 미국의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인 사회의 영향과 관련, 워싱턴 소식통은 “2013년 현재 23만명으로 추산되는 한국계 불법이민자 중 최대 10만명 정도가 이번 조치의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