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두 부류 중 하나일 것이다. 십대 청소년이든지 아니면 십대를 아주 잘 이해하는 사람이든지. 흔히 십대들이 ‘간지난다’라고 말할 때는 ‘멋있다’ 혹은 ‘스타일이 살아 있다’는 뜻으로 통한다. 또한 옷이 몸에 잘 맞아서 어울리는 사람을 대할 때도 이 말을 쓰곤 한다. 언제부터 우리말인 것처럼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출처가 ‘느낌’이란 뜻의 일본어 ‘간지(感じ)’로부터 온 것은 분명하다. 디자인과 패션문화가 발달한 일본을 동경하는 청소년들에게 ‘간지나는’ 차림새는 부러움과 약간의 질투심을 유발하곤 했었다.
그런데 청소년들에게 ‘간지’가 왕따를 이겨내고 개성 있는 인생을 살도록 만드는 혁명적 언어로 사용될 수 있다면 ‘간지문화’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오기환 감독의 ‘패션왕’은 ‘간지나는’ 세대가 왕따를 극복하고 자신감 넘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매우 흥미로운 영화다. 인기 있는 웹툰을 영화로 만드는 요즘 영화계의 대세를 반영하듯 ‘패션왕’도 5억뷰가 넘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열혈팬들을 확보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왕따에다 ‘빵셔틀’(일진을 위해 학교 매점에 달려가 빵을 사오는 것)이 특기인 우기명(주원)은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된다. 좀 산다는 학생들이 입는다는 고가의 유명 패딩 점퍼를 싸게 샀다는 기쁨도 잠시, 짝퉁인 것이 밝혀지면서 다시 한번 ‘찌질한 인생’으로 추락하려는 순간 그는 인터넷 쇼핑을 운영하는 ‘간지남’ 남정(김성오)을 만나 패션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영화의 구조는 밑바닥 인생이 하늘을 날게 되는 ‘개천에서 용 나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술 지망생이 스승을 잘 만나는 바람에 고수가 되는 무협지를 대하는 느낌도 제법 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간지남’이 가진 철학이며, 그 철학이 고질적인 왕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첫째, 세대의 유행을 쫓아 사는 타인지향적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이(롬 12:2) ‘간지나는’ 사람의 특징이며 왕따를 탈출하는 첫걸음이란 사실을 ‘패션왕’은 지적하고 있다. 간지남 남정은 이렇게 말한다. “상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입고 간지만 나면 그만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청소년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은 해외 유명 브랜드 점퍼를 사달라고 조르는 자녀들 때문에 등골이 휘어진다. 국민복으로 자리 잡은 수십만원대의 N 브랜드는 더 이상 눈에 차지 않고, 100만원이 훌쩍 넘는 C와 M 브랜드 정도는 입어줘야지 학교에 다닐 만하다는 게 요즘 학생들 생각이다. 개성과 자신의 생각은 어딘가에 버려둔 채 남들이 입는 대로 따라하면서 정품 입는 것을 무슨 벼슬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쭐대는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둘째, 돈과 권력이 힘을 발휘하는 세상일지라도 간지에 대한 신념이 있을 때 자존감은 흔들리지 않으며, 왕따를 당하는 일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일이 가능함을 영화는 보여준다(벧후 1:10). “없는 자들이 있는 자들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간지뿐이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 뽑은 최고의 명대사다. 미모가 권력이며, 그 권력을 얻기 위해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간지는 자칫 외모지상주의에 편승하는 행동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외모지상주의가 말하는 외모란 성형과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천편일률적인 미모를 뜻한다. 촌스러움이 새로운 멋스러움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돈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셋째, 핏(Fit)을 살리는 일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가장 많이 웃은 대목은 옷이 몸에 잘 맞도록 몸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핏을 살리자!”는 구호를 외치며 학교 복도에서 이상한 자세로 운동하는 장면이다. 핏은 옷이 몸에 잘 맞을 때 신체의 윤곽이 잘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핏한 옷과 몸이란 행함과 믿음의 관계와도 같다(약 2;22).
가만히 생각해보면 ‘패션왕’은 왕따였던 주인공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중심에 서는 이야기란 점에서 왕따를 벗어나는 지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으로나 생활면에서 ‘간지나는’ 삶에 이르도록 도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강진구(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강진구의 영화산책] 왕따를 이기는 ‘간지’세대
입력 2014-11-22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