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생명의 친구들, 생명보듬이가 되자

입력 2014-11-22 02:10

그동안 두 번의 칼럼에서 우울증을 다루었는데 우울증과 항상 같이 언급하는 중요한 주제가 있다. 바로 자살이다. 수능시험을 치를 때면 올 해 또 누군가가 자신을 비관하며 극단적인 결정을 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오늘도 진료실에서 취업에 실패해 낙심한 청년들을 만났다. 이들의 자살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자살예방 활동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게이트키퍼(gatekeeper)를 양성하는 일이다. 직역하면 문지기인데 생명을 지킨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므로 생명지킴이라고 주로 번역한다.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에서는 게이트키퍼를 ‘생명보듬이’라고 부른다. 생명을 보듬어 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필자가 관여하는 다른 기관에서는 ‘생명의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단어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자살예방의 최전선에서 보다 안전한 사회 환경을 만드는 데에 힘쓰는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우울증과 자살의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을 위해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이시라면 기본적인 자살예방교육을 받아서 생명보듬이로서의 역량을 갖추기를 권유한다. 교육 내용 일부를 소개해드리고 싶다.

생명보듬이는 자살 생각이 있는 사람과 아직 자살 생각이 없는 힘든 이를 돕는다. 확률적으로 당연히 아직 자살 생각이 없는 힘든 이가 더 많다. 그들에게는 생명의 소중함을 고취하는 것,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 앞으로 자살 생각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즈음 청소년과 청년들에게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일 순위는 아마도 성공주의와 물질주의에서 뒤처지거나 쓰러져 있을 때에도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는 일일 것이다. 교회마저 성공주의와 물질주의를 표방하고 있을 때가 많아서 정말 씁쓸하다. 의도를 가지고 느리게 가거나 애써 노력해도 뒤처지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을 잘 보듬어야 한다. 내 형제와 내 자녀에게 먼저 그러하도록 노력하자.

아마도 우리 모두 돈 없고 성취 없이 어떻게 이 험한 나라에서 생존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할 것이고 그래서 잘 되라는 마음에서 쓴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쓴소리는 의도와 정반대로 작용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 의도를 살리기 위해선 오히려 상대를 보듬는 것이 좋다.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마 5:3,4)은 값싼 위로가 아니라 진리이다.

자살 생각이 이어질 수 있거나 이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이 부분에서는 확실히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데 여기서 일 순위는 안전하게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방송 매체에서 무분별하게 자살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자살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자살의 위험이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때에는 오히려 ‘자살’이라는 단어를 꼭 사용해야 한다. 물론 진지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안전한 자리에서 사용해야 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 누가 자신 있게 “나 자살하고 싶어”라고 말하겠는가? 스스로도 용납하기 힘든 그런 마음을 감히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을 한다고 해도 비판과 비난과 훈계와 강압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는데 아쉽게도 정말 예상대로 대화가 진행되는 편이다. 예수님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끌려온 여인에게 먼저 정죄하지 않은 것(요 8:11)이 비슷한 대응 원리이다.

자살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그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오히려 예방이나 개입이 가능하다. 그런데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야기를 듣는 자신이 너무 힘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살예방교육은 안전하게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요령을 배우는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