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외이사 문제 해결 없이 금융사 개혁 없다

입력 2014-11-21 02:50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됐다. 외부 전문가들을 이사회에 참여시켜 대주주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외이사들이 경영진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채워지면서 대주주 견제 및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거수기 노릇만 해왔다. 제도 도입 16년이 됐지만 여러 개선책에도 불구하고 한계와 문제점을 여실히 노출했다. 대기업도 그렇지만 금융사 사외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경영의 핵심인 금융권 사외이사 자리의 경우 교수 등 특정 직업군이 대거 차지하는 바람에 최근 들어서는 ‘자기 권력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올해 KB 내분 사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KB금융 사외이사들은 지주회장과 은행장이 극한 대립을 벌이는 과정에서 아무런 조정 역할도 못하다 은행장에 이어 회장이 물러났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KB사태에서 보듯 현재 금융사 사외이사들은 책임은 없고 권한만 누리는 존재다. 게다가 사외이사들이 새로운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구조여서 임기 만료 때에는 사외이사끼리 서로 연임을 보장하거나 지인을 추천하며 자리를 대물림한다. 그 자체가 권력인 것이다. 금융·회계 분야의 전문성이 별로 없음에도 경영진과의 공생관계를 통해 얻는 1인당 연간 평균 5700만원의 보수(은행지주 기준)는 별도다. 이러니 사회적 비난이 빗발치는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금융위원회가 이런 자기 권력화 현상 등을 차단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내년부터 교수나 공무원이 주요 금융사 사외이사로 들어가기 어렵게 만드는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20일 입법예고했다. 사외이사 구성에 ‘다양성의 원칙’을 적용한 게 골자다. 여러 직군, 직종의 전문가들로 균형 있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는 금융, 경영, 회계 경험과 지식을 보유할 것을 자격요건으로 했다. 이 경우 해당 분야에 경험이 없는 교수나 공무원, 연구원 출신이 사외이사 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국내 10개 은행지주사 사외이사 가운데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60%를 훨씬 넘는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 역시 금융 경험을 갖추도록 한 것과 기관투자가나 주주 등 외부에서 사외이사 후보군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전문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사외이사에 대한 감시와 평가도 강화해 매년 금융사 자체 평가를 실시하고 2년마다 외부 기관의 평가를 받도록 권고했는데 이는 권고가 아니라 의무화할 일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경영실태 평가 때 사외이사의 적격성을 평가하도록 하겠다는 건 경계해야 할 소지가 있다. 금융 당국이 자의적 잣대를 들이밀 수 있어 제2의 관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당국은 입법예고 기간 중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보완할 부분이 있으면 최종안에 반영하기 바란다. 이번 기회에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그래야 제도 도입 취지인 경영진과 이사회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해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꾀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