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베이징, 도로 잿빛… APEC 끝나자 스모그 습격

입력 2014-11-21 03:33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폐막되고 1주일이 지나면서 베이징의 하늘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중국 정부가 APEC 기간 차량 운행을 줄이고 수천곳의 공장을 정지시키면서 얻은 일시적인 ‘APEC 블루’는 사라지고 강력한 스모그가 베이징 하늘을 다시 뒤덮었다.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 사이트에 따르면 20일 오전 한때 베이징의 PM 2.5(지름 2.5㎛ 이하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368㎍/㎥을 기록했다. 전날 최고 409㎍/㎥까지 기록한 강력한 스모그가 이틀째 이어졌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PM 2.5 기준치(25㎍/㎥)의 16배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일 APEC 회원국 정상들과의 환영 만찬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APEC 블루를 계속 유지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지만 속수무책이다. 중국 언론조차도 “APEC 블루는 일시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희생해 얻은 성과에 불과하다”고 자조하고 있다.

중국 정부를 믿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베이징의 프랑스 국제학교는 스모그를 차단할 수 있는 교사(校舍) 신축 계획을 발표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내년 말 완공 계획인 교사는 공기 정화시설을 갖추고 깨끗한 공기를 건물 곳곳에 공급하도록 설계됐다. 2010년 상하이엑스포 당시 프랑스관을 설계한 건축가 자크 페리에가 설계를 맡았다. 페리에는 “새 교사는 높은 압력을 유지하도록 설계해 창문을 열어놔도 오염된 외부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교사 신축 예산은 공사비와 부지 임대료 등 2390만 유로(약 333억원)로 이 중 공사비만 1650만 유로다. 프랑스 국제학교가 교사 신축에 나선 것은 스모그로 인해 학생이 해마다 줄고 있기 때문이다. 1050명 수준이던 학생 수는 올해 950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학교 측은 신축 교사가 완공되면 1500명까지 학생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생들이 줄어드는 것은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다. 올 초 베이징 국제학교 교장들이 모여 관련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영국계 해로우 국제학교 등 다른 국제학교들도 홈페이지에 공기여과 시설을 갖췄다고 홍보하며 학부모의 불안감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베이징 스모그 근절을 위해 중국 정부도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국 국무원은 전날 ‘에너지발전전략 행동계획(2014∼2020)’을 통해 에너지 소비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스모그의 주범인 석탄 소비량은 2020년까지 연간 42억t에서 늘리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소비량은 36억t이었다. 이에 따라 현재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67.1%를 차지하는 석탄 비중은 2020년 62%로 낮아진다. 이 밖에 5.3%인 천연가스와 9.2%인 비화석 연료의 비중을 각각 10%와 15%로 높이겠다는 목표다. 또 향후 동부 연안 등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내륙 원전 건설에 대해서도 타당성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