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이 야당 만나자는데 굳이 피할 건 뭔가

입력 2014-11-21 02:40
새정치민주연합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거절 이유에 대해 시기가 적절치 않고, 논의할 수준의 어젠다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측은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결과와 정국 현안논의가 주의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 비대위원장은 사전 조율 없이 대통령과 만나 사진이나 찍고 밥 먹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에 거절하게 됐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또 국회 상임위별로, 원내대표단끼리 자주 만나고 있는데 느닷없이 청와대에 가면 가이드라인이 생겨 협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견해도 밝혔다.

야당의 거절 이유를 보면 대통령과의 만남 자체를 정략화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한 번 회동을 했다고 해서 예산안 처리 등 여야가 의견을 달리하는 현안에서 가이드라인이 생긴다는 발상 자체가 정국을 너무 정략적 시각으로만 보는 것 아닌가. 지금 여야 사이에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굵직한 현안들이 있다. 야당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이른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 의혹에 관한 국정조사 실시가 있고, 여권이 추진 중인 공무원연금 개혁 등이 있다.

야당으로서는 이런 현안들과 관련, 청와대 회동을 통해 좀더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그런 정치적 역량이 안 돼서 청와대 회동을 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 정치권에서는 회동이 이뤄지면 당연히 거론될 것으로 보이는 공무원연금개혁 대해 야당이 내놓을 구체적 의견이 없어서 거절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들이 정국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나라가 안정돼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야의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의견 교환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판단을 할 수 있다. 논의 과정 자체가 정치권에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시키는 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청와대도 유념할 것이 있다. 대통령이 필요할 때에만, 그것도 여야 지도부를 집단으로 초청해서, 결과적으로 알맹이 없는 얘기만 오가는 회동은 이제 피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은 현안이 있으면 의견교환을 위해 비중 있는 의원들을 한두 명씩 백악관으로 초대해 협조를 요청하곤 한다. 우리처럼 기자들 부르고 사진 찍고, 비서실장이나 수석들이 배석하고, 그런 인위적인 의전은 거의 없다. 실제로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속 깊은 대화가 오간다는 뜻이다. 이제는 그런 청와대 회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