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인사이드] 손학규·박영선… 정치적 ‘러브라인’

입력 2014-11-21 03:31

정계 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과 세월호 정국 와중에 원내대표를 사퇴했던 박영선 의원이 최근 정치적 ‘썸’(남녀가 잘되어간다는 뜻의 신조어)을 타고 있다. 그동안 큰 교류가 없었던 두 인물이 지난 15일 전남 강진에서 식사한 것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박 의원의 차기 전당대회 출마설에서부터 비노(비노무현)계 신당설까지 나온다.

손 전 고문은 현재 강진의 백련사 인근 흙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을에 비 새는 곳을 수리했다지만 장작으로 불을 때는 열악한 곳이다. 찾아가기도 힘들다. 산속이다 보니 휴대폰이 잘 안 터지고, 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집을 비운 손 전 고문을 만날 수 없다. 정동영 상임고문이 지난달 초 불쑥 찾아갔지만 못 만난 이유다. 손 전 고문의 한 측근은 20일 “부지런한 분이지 않느냐. 아예 등산로를 개척해놨더라”며 “정치인이 찾아오면 슬쩍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런데 손 전 고문은 박 의원과는 만나서 점심식사까지 함께 했다. 7·30재보선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강진을 찾아온 유력 인사와 만난 것이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왜 만났을까. 일단 박 의원이 손 전 고문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백련사 점심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동료 의원들과 함께 해남을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시간이 맞은 것이다. 박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안부 인사차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짧게 언급했다. 손 전 고문이 정치 이야기라면 손사래를 치는 터라 심각한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치인은 ‘입끝’이 아니라 ‘발끝’을 봐야 한다고 했다. 평범한 발걸음이었을지 모르나 파급력은 컸다. 야권의 차기 당권 구도 때문이다. 친노계 좌장인 문재인 의원은 내년 2월 초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게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대권 후보를 지낸 문 의원이 나오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그래서 비노계에서는 안철수 의원과 함께 박 의원이 대항마로 꼽힌다. 비노계 주자가 누가 되든 안철수·김한길 의원 세력과 손학규계가 뭉쳐야 속칭 ‘게임’이 된다는 말이다.

손 전 고문이 전대를 비롯한 향후 당내 역학관계 속에서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간간이 들리는 비노계 중도 신당 창당 시나리오에도 손 전 고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흙집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박 의원은 차기 전대 출마 여부를 심각히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인다. 공식 입장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다. 그래도 최근 행보와 주변 분위기를 종합해보면 출마 가능성은 열려 있다. 박 의원의 단점은 믿을 만한 독자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안철수·김한길 체제의 당권파와 손학규계 등의 지지를 통해 당선됐다. 손 전 고문 측과 박 의원 측은 “원내대표 시절 손학규계가 도와줬다”고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당시 박 의원은 손학규계인 조정식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했고, 법사위 동료인 이춘석 의원과 가깝다.

박 의원이 차기 전대에 나간다면 손 전 고문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당 관계자는 “지금은 정계를 은퇴한 손 전 고문이 도덕적으로 가장 우위에 있다”며 “그가 후견인이 돼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손학규계 내부에서는 견제 시선이 있다. 박 의원이 주인 없는 틈을 타서 손학규계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손학규계의 한 관계자는 “정계 복귀 여부를 떠나 손 전 고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일단 우리끼리 뭉쳐 있자는 생각들”이라고 전했다.

박 의원이 손 전 고문의 지원을 얻는다고 해도 당 대표 출마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때 ‘박남매’로 불릴 정도로 가까웠던 박지원 비대위원이 열심히 선거를 준비 중이다. 두 사람 사이에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거기다 원내대표 시절 탈당 사태, 세월호 특별법 8·7합의 파동 등으로 리더십 위기에 몰렸던 일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박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만일 당 대표에 나간다면 그냥 밋밋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무엇을 기치로 내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