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판사와 검사는 출세의 상징이다. 가문의 영광임은 여전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법시험 합격자는 대부분 판검사에 임용될 수 있었다. 합격자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많을 때는 한 해 70∼80명을 뽑기도 했지만 5∼10명만 선발하는 해도 있었다. 하지만 81년 이후 합격자가 급증하면서 판검사 임용 경쟁이 치열해졌다. 지금은 하늘의 별따기다. 사법시험 합격자나 로스쿨 졸업생이 판검사가 되려면 성적이 상위 10% 이내에 들어야 한다.
판검사는 우리 사회 최고의 갑(甲)이다. 각종 수사와 재판을 통해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한다. 대우도 좋다. 사법시험과 비슷한 수준인 행정고시 합격자는 5급 공무원(사무관)에 임용되지만 판검사는 곧바로 3급 공무원(부이사관)이 된다. 판사 중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으로 차관급 이상 대우를 받는 사람이 147명이나 된다. 검사는 검사장급 49명 전원이 차관급이다. 판검사는 퇴임 후 거의 예외 없이 전관예우를 받기 때문에 1년에 10억원 벌기는 식은 죽 먹기다. 고위직으로 퇴직하면 수십억원을 벌 수 있다. 정치권의 영입 1순위이기도 하다.
현재 판사와 검사의 정원은 각각 2844명과 1942명이다. 70년 전후 각각 300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다. 그럼에도 대법원과 검찰청에선 인력난을 호소해 왔다. 국민의 권리구제 욕구가 빠른 속도로 커지기 때문이란다. 이에 법무부는 향후 5년간 판사 370명, 검사 350명을 늘리기로 하고 관련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이 개정되면 전체 판검사가 5000명을 넘어선다.
문제는 판검사 수가 크게 증가하지만 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면 명문 로스쿨을 졸업해야 판검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4년제 대학을 나온 뒤 서울의 유수한 로스쿨에서 3년을 더 공부하려면 1억원 이상의 학비가 든다. 대학 졸업과 함께 돈벌이에 나서야 하는 서민층 자녀들에겐 언감생심이다. 판검사가 부모 재력의 상징인 사회는 상상만 해도 두렵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판검사 5000명 시대의 그늘
입력 2014-11-21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