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2000억 달러 '大鵬의 꿈' 항공전쟁 불 붙었다

입력 2014-11-21 02:58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 보잉은 지난 7월 민항기 시장전망 보고서를 통해 향후 20년간 전 세계에서 3만6770대의 신규 항공기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5조2000억 달러(5730조원) 규모로 2024년까지 매년 287조원의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이는 여객기 시장이지만 고도의 기술력과 판매망을 필요로 하는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그동안은 독과점 경쟁체제로 굴러 왔다.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시장을 사실상 양분했다. '빅 2'가 장거리 노선 중심으로 중·대형 여객기 시장 쟁탈전에 집중하는 사이 브라질 엠브라에르와 캐나다 봄바디어는 근거리 노선 중심의 소형 여객기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대붕(大鵬)의 꿈'을 꾸는 중국과 일본이 잇달아 신형 여객기를 선보이고 자국 항공사를 중심으로 수주에 나서면서 시장구조에 변화가 감지된다. 아시아의 참전으로 세계 항공대전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늘로 뻗치는 ‘중국굴기’=중국상용항공기유한공사(코맥·COMAC)는 2010년 주하이(珠海) 에어쇼에서 당시 개발되지도 않았던 중형 여객기 C919의 사전 구매계약을 100대 성사시키며 세계 항공 시장을 놀라게 했다. 가격조차 공개되지 않은 모형 단계였지만 중국 주요 4개 항공사를 중심으로 주문이 쏟아졌다.

코맥은 지난 12일 발표한 ‘중국상용기시장 예측보고서’를 통해 2033년까지 중국에서만 새 여객기 5500여대가 도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자국 국내선 여객기 3700대를 포함한 수치로 6740억 달러 규모다.

C919는 중국이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세계진출까지 노리며 개발 중인 야심작이다. 지난 11∼16일 열린 주하이 에어쇼에서 추가로 30대의 주문을 받았고, 19일 현재 누적 수주대수 430대를 달성했다. 첫 비행은 2017년, 첫 인도는 2018년으로 예상된다. C919의 품질 및 정비 서비스가 글로벌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빡빡한 생산 일정을 맞출 수 있을 지 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하지만 보잉과 에어버스가 타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대체적이다. 168좌석과 158좌석 두 모델을 기본형으로 하는 C919는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경쟁기종인 보잉의 B737, 에어버스의 A320 시리즈가 장악하고 있는 중형 여객기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관측된다.

코맥은 C919와 별도로 78∼90석 규모의 ARJ21-700도 개발해 인도를 앞두고 있다. 중국 국내선과 중국∼동남아 항로가 주요 타깃인 AJR21-700에 대한 누적주문은 281대를 기록했다.

◇보잉·에어버스는 아시아 공략으로 반격=중국 여객기 시장은 보잉의 독주체제였지만 에어버스가 공을 들이면서 지난해 점유율을 5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에어버스는 아시아의 항공수요 증가에 대비해 2008년 유럽지역 외에 처음으로 중국 톈진(天津)에 생산공장을 지었다. 공장 근로자의 90%를 현지인으로 채용해 중국 정부와의 관계도 긴밀히 하면서 매달 A320기종 4대를 생산하고 있다. 이에 보잉은 중국에서 조립라인 입지 선정에 들어가며 대항에 나섰다. B737기종의 조립라인을 설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버스는 보잉의 787·777 기종과 경쟁하기 위해 개발한 최신 중형 광폭동체기 A350XWB를 18일 한국에 선보이기도 했다.

◇신흥국 시장 노리는 일본=미쓰비시(三菱)중공업의 자회사인 미쓰비시항공기는 지난달 18일 소형 제트여객기 ‘미쓰비시 리저널 제트(MRJ)’의 비행 시험용 기체를 공개했다. 1964년 개발된 YS-11 이후 50년 만에 나온 일본산 여객기다.

MRJ의 항속 거리는 최대 3400㎞로 국제선에 투입되는 주요 여객기의 4분의 1 정도지만, 신흥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근거리 노선용으로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미쓰비시는 최첨단 엔진을 탑재해 해외의 동급 모델에 비해 연비를 20% 가량 개선시켰다고도 강조했다. 경쟁대상 목표는 현재 항공기 제작업계에서 납품 대수 기준으로 3·4위를 달리는 엠브라에르와 봄바디어다.

일본항공은 지난 8월 MRJ 32대를 구입하겠다고 밝혔고, 전일본공수와 스카이웨스트, 만달레이항공, 이스턴항공 등도 191대를 발주한 상태다. 78석과 92석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지는 MRJ는 내년에 시험 운항을 한 후 2017년에 정식 납품될 예정이다.

이밖에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2030년 실용화를 목표로 200석 규모의 차세대 여객기 개발도 추진 중이다.

◇기술력 바탕으로 걸음 떼는 한국=자력으로 민항 항공기를 생산하는 사업은 우리 정부와 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2007년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1조2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까지도 논의됐다. 다만 개발 자체보다도 해외 시장에서 이미 굳어진 기체 판매 영업망을 새로 뚫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해 큰 진척이 없었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조업체 한국항공우주산업(카이·KAI)은 걸음마 단계지만 여전히 세계 여객기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 항공기 제작사들에 납품하면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지난 2월에는 보잉과 7300억원 규모의 B787 주날개 기체구조물 납품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기도 했다. 아울러 보잉 주요 기종의 부품 제작 사업을 맡고 있는 대한항공도 지난 13일 B737 날개 부품 5000호기 납품 실적을 기록했다.

카이는 2020년 연매출 10조원에 세계 항공업계 순위 15위 도약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핵심은 수익성이 높은 민수사업 위주로 사업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33%를 차지하던 민수 부문의 매출 비중을 2020년까지 64%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카이 관계자는 “민항 사업에서는 보잉·에어버스와 경쟁 영역이 겹치지 않는 90인승 중형기와 25인승 비즈니스 제트여객기 프로젝트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