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북한 유학생이 북한 당국에 의해 강제 송환되는 과정에서 탈출한 사건은 김정은 정권의 장성택 숙청 작업이 1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유학 중인 가족들에까지 무자비한 숙청이 자행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번 사건이 ‘강제 납치’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국제법 위반 논란과 함께 열악한 북한 인권 문제가 재차 불거지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유학생도 예외 없는 광범위한 숙청 작업 진행 중=북한 유학생 한모씨는 부친이 지난해 말 장성택 처형 사건 여파에 휩쓸려 최근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의 부친이 북한에서 가진 지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장성택 세력 숙청에 나선 김정은 정권이 아버지에 이어 외국에 있는 아들까지 숙청에 나선 것으로 봐선 상당히 고위 인사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한씨는 아직 대학생 신분이고,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유학 중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이 납치나 다름없는 무리한 강제 송환에 나선 것은 장성택 세력 숙청 작업이 아주 광범위하고, 또 예외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씨 사례에 비춰 다른 고위 인사들의 해외 체류 자녀나 가족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북한으로 끌려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실제로 지난해 말 장성택 숙청을 전후로 그의 조카인 장용철 당시 말레이시아 주재 대사, 매형인 전용진 쿠바 대사를 비롯해 박광철 스웨덴 대사, 홍영 유네스코 대표부 부대표 등을 줄줄이 소환했다.
이번 사건이 북한의 열악한 인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많이 해온 유럽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향후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특히 프랑스 등에 의해 정식으로 수사가 이뤄질 개연성도 있다.
◇송환 불응자 더 있을 가능성도=숙청 작업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당국의 소환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한씨 역시 송환에 응하지 않자 북한 당국이 급기야 제삼국에 있던 국가보위부 요원들까지 파견해 강제 송환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과거에도 몇 차례 납치에 실패한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9년 3월 홍순경 당시 태국 주재 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 납치미수 사건이다. 북한은 당시 홍씨와 그의 가족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태운 차량이 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이들을 놓쳤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태국 경찰에게 홍씨 부부가 인계됐고 이들은 한국 망명을 택했다. 1997년 장승길 당시 이집트 주재 대사와 그의 형인 장승호 당시 프랑스 주재 무역대표부 대표도 송환에 불응해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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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1-20 03:47 수정 2014-11-20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