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는 노부부가 있다. 부인은 예배도 열심히 참석하고 새벽기도도 다니고 교회 모임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열심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다. 나의 아내를 만날 때면 부인은 “남편의 믿음이 더 깊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자주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믿는 자라면 생의 어느 순간에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믿음이 시작되는 시점은 바로 구원에 대한 확신이 드는 순간부터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받혀 죽으심에 대한 확신이다.
구원에 대한 확신은 주로 성경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된다. 필자도 우연히 듣게 된 한 목사님의 설교에서부터 구원의 믿음이 시작되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는 말씀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는 말씀은 구원의 믿음이 어떻게 자리 잡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노력해서 다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믿음도 마찬가지다. 삼위 하나님을 믿고 성경 말씀이 믿어지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노력하는데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이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그래서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은 물과 공기처럼 그 고마움을 잊을 때가 있지만 믿음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한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12장 8∼9절에는 성령의 9가지 은사 가운데 하나가 믿음의 은사임을 증거하고 있다.
구원의 믿음은 마음이 굳어버린 자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믿음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겸손한 자라는 점이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 3:34)라는 말씀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더라도 거만한 자라면 자연스럽게 “도대체 당신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가. 나에게 보여주면 믿을 수 있다”고 말하거나 “당신의 하나님이나 내가 믿는 신이나 스승이 똑 같다”고 답하기 쉽기 때문이다.
구원의 믿음을 갖게 된 이후에도 우리의 믿음은 계속 성장해야 하는데 이것이 만만치 않은 과제다. 성경은 믿음이 성장하는 일은 은혜의 분량에 따라 믿음의 분량도 결정된다고 말한다. 구원의 믿음 이후 우리는 자기 자신이 서서히 변해가는 일을 체험하게 된다.
자신의 성품이 서서히 변화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일이 일어남을 인식하게 된다. 이를 두고 우리는 믿음의 진보 혹은 믿음의 자라남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구원의 믿음에서 시작된 세상 사람들과의 구분되어짐은 믿음의 자라남과 함께 점점 예수님께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어떤 성도들은 이 단계에서는 성경을 열심히 탐독하고 하나님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들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일까지는 버릴 수 없다. 마태복음 9장 2절에는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오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씀이 등장한다.
여기서 ‘그들의 믿음’은 구원 이후에 얻게 된 중급 수준의 믿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정확하게 지적한 성경 말씀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는 말씀일 것이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구원의 믿음을 넘어 또 다른 수준의 믿음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전자의 믿음을 초급 믿음이라 부를 수 있다면 후자의 믿음은 중급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중급 믿음이 끝이 아님에 대해서도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다. 믿는 자들 가운데 소수에게는 예수님께서 의인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데 이런 상을 받는 자들은 누구일까. 이 세상이 나그네 세상임을 인식하고 이 세상에 살면서도 저 세상에 눈길을 두고 사는 사람일 것이다.
이처럼 믿음의 마지막 단계까지 도달한 사람들이라면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8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구원의 믿음으로부터 앎과 실천과 열심의 믿음으로, 그런 다음에는 하늘나라를 볼 수도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는 그런 믿음까지 발전시킨 사람들일 것이다. 이따금 나는 이런 다짐을 해 본다.
“이왕 믿음의 길로 들어섰다면 믿음의 단계를 한층 올려서 마지막 단계의 믿음에까지 다가서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의 세상 읽기] 믿음의 성장은 왜 더딘가
입력 2014-11-22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