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르포] 위기의 기도원… 부흥, 어떻게?

입력 2014-11-22 02:29
지난 18일 화요일 저녁. 손톱만큼 남아 있던 해가 자취를 감추자 추위가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천보산민족기도원(유택진 원장). 산 공기는 차가웠다.

그러나 기도원을 찾은 신자들의 발길을 막진 못했다.

신자들은 오후 7시부터 시작하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예배당 바닥엔 스펀지 방석이 사방으로 깔려 있었다. 바둑판 같았다. 어림잡아도 200개는 넘었다.

신자들은 앞줄부터 차곡차곡 자리를 잡았다. 90%는 여성이었다. 작은 손가방을 든 50대 여성부터 성경찬송만 든 30대, 정장 차림의 20대 여성도 보였다. 집회 시간이 가까워오자 수십명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기도원 셔틀버스가 도착한 것이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온 30대 여성, 부부, 목회자로 보이는 남성들이 속속 들어왔다. 표정은 대체로 비슷했다. 비장함과 기대감이 흘렀다.

예배가 시작되자 헤드마이크를 쓴 여성 사역자 한 명이 등장했다. “이 시간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와 개인, 은혜받기를 위해 먼저 기도합시다. 주여 삼창으로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오 하나님∼.” 옆자리의 한 부부는 티격태격했다. 남편이 억지로 온 모양이다. 아내는 “자기, 그럴 때 아니야. 눈 감아요. 하나님이 보고 계세요”라고 했다.

5분여의 기도가 끝나자 경쾌한 리듬의 반주가 착착 맞춰 흘렀다. 신시사이저와 드럼 등을 합성한 찬송 반주였다. 예배당 전면 스크린에는 찬송 가사가 떴다.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내가 매일 기쁘게’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등이 이어졌고 인도자는 ‘스타카토’ 기법으로 한 음씩 짧게 끊어 부르며 찬송을 리드했다. 스타카토 창법은 ‘기도원 스타일’이었다. 찬송은 서너 번씩 반복됐다. 200여명의 청중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거나 두 손을 들고 찬송에 몰입했다.

30분간의 찬송이 끝나자 강사 목사가 등장했다. 안도엽 경기중앙침례교회 목사였다. 안 목사는 달변이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함께 자신의 간증을 섞으며 시작한 설교는 끝날 줄 몰랐다. 그는 청중을 울리고 웃기면서 들었다 놨다 했다. 그렇다고 가벼운 설교는 아니었다. 방언이나 은사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성경 본문에 충실하면서도 신자들의 마음을 터치했다.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십시오. 여러분이 기도원에 오르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고난을 모두 아십니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코너까지 온 것 아니겠어요. 십자가만 바라봅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믿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독수리 날개로 우리를 업어 인도하실 겁니다.” 마지막 말은 이날 성경 본문인 출애굽기 19장 4절이었다. 교파가 다르고 다니는 교회가 달랐지만 신자들은 설교에 집중하며 “아멘”을 연발했다.

태릉선수촌과 별내신도시 등 서울 북부에 위치한 이 기도원은 접근성이 좋은 편이어서 최근 신자들에게 입소문이 나 있다. 강사들도 검증된 목회자들만 세운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석순(한국중앙교회) 김양재(우리들교회) 목사가 지난 8월과 10월 다녀갔고 박인용(월드와이드교회) 목사는 10년째 금요철야를 인도하며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원은 순회선교단 김용의 선교사와도 협력하고 있다.

박인용 목사는 전화 통화에서 “기독교 신앙의 야성을 키울 수 있는 통성기도가 있고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24시간 개방됐다는 점에서 기도원은 한국교회 신앙의 보고(寶庫)”라며 “기도원운동은 한국교회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기도원 절반이 줄었다

천보산금식기도원 등 대도시 인근의 ‘뜨는’ 기도원을 제외하고는 한국교회 기도원은 20년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교계에서는 그나마 교회 부설 기도원만 유지된다는 말이 나온다. 잘되는 기도원은 전국에서 10군데 안팎이란 자조 섞인 말도 들린다. 그만큼 기도원을 찾는 성도 수가 줄었고 이는 최근 교회가 처한 정체 위기와도 맞물려 있다.

배성식 이룸교회 목사는 “건전하고도 은혜가 있다는 기도원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기도원이 쇠락하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며 “성도들의 신앙 약화와 일부 기도원들의 왜곡된 신앙운동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 기도원은 6·25전쟁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효시는 1925년 제14회 장로회 총회에서 금강산에 기독교수양관 건축을 결의하면서부터다. 이후 광복과 전쟁을 겪으면서 비관과 종말의식이 성도들을 자극했고 기도원으로 모여들게 했다. 광복 후 첫 기도원은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에서 시작된 나운몽의 ‘용문산기도원’으로 알려진다. 이후 전쟁과 4·19혁명, 5·16군사정변 등 사회적 불안을 연이어 겪으면서 신자들로 하여금 기도의 열기를 촉발시켰고 기도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한국기독교기도원총연합회 이사장 정진수 목사는 “80년대까지 전국의 기도원은 2200여개에 달했고 기도원마다 사람이 몰려들어 ‘강단에서 바늘을 던져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며 “지금은 절반으로 줄어든 데다 운영마저도 힘든 상황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도원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사업 목적을 겸한 기도원, 자체 교회의 부속시설로 수양관 형식의 기도원, 환자 치료를 위한 수용소 개념의 기도원, 특별 은사를 받은 신자들이 설립한 기도원, 개인 기도원 등이다. 그러나 기도원운동이 과열되면서 신비주의나 열광주의적 신앙 행태를 초래했고 신앙의 건전성마저 훼손하는 비윤리적 사례가 등장하면서 교계나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기도원은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쇠퇴의 길을 걸었다.



기도가 회복돼야 기도원도 회복된다

실제로 지난 17일 북한산 자락에 주소지를 둔 A기도원과 B기도원을 방문해 보니 적막감만 맴돌았다. A기도원은 활동중지 상태다. 자신을 강도사라고 밝힌 한 남성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원장님이 고령인 데다 몸이 불편해 중단했다”며 “올 초 기도원을 매각하려고 내놨으나 아직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지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도 90년대까지 기도하려는 사람이 몰려왔다”며 “이제는 살 만하니 안 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인근 B기도원은 관리인조차 만날 수 없었다. 텅 빈 예배실은 냉기만 흘렀고 1주일 전 소인이 찍힌 우편물 묶음만 입구에 나뒹굴었다.

삼각산으로 불리는 북한산은 수십 년 전부터 한국교회의 ‘기도 동산’ ‘능력의 봉우리’로 불렸다. 수많은 신자들이 기도의 줄을 잡기 위해 산을 올랐고 금요일 밤이면 산 속의 130여개 기도터와 제단에서 기도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지금은 기도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신자 자체가 줄어든 데다 북한산이 국립공원화되면서 기도 행위가 위협받고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관계자는 21일 “미탐방로에 대한 야간산행이나 출입금지 구역 위반 등 자연공원법에 저촉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며 “기도행위자뿐 아니라 단순 등산 위반도 포함한다”고 말했다. 공원 측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단속(과태료) 건수는 조금씩 늘어 2012년 55건, 2013년 79건을 차지했다. 과태료는 1회 위반 10만원이다.

전문가들은 기도원 쇠퇴의 제일 원인이 기도 쇠퇴에 있다고 보고 다시 기도의 불을 지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인용 목사는 “기도원은 야성적 기도가 생명”이라며 “본질적인 신앙의 야성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체험적 신앙보다는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진수 목사도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기도 외에는 어떤 능력도 생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때가 악한 만큼 기도의 재무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why Jesus?’의 저자 박에녹 목사는 “기도원의 원래적 사명과 건전성을 회복해야 기도원도 흥하게 될 것”이라며 “기도원을 찾는 신자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