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수능 자격고사화’ 주장

입력 2014-11-20 02:09
교육 당국은 지난해 세계지리 8번 문제 오류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채점하는 사태를 겪고도 올해 출제 오류 논란을 막지 못했다(영어 25번, 생명과학Ⅱ 8번). 고질적인 난이도 조절 실패 역시 재현돼 ‘물수능’ 논란이 거세다. 이에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자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대학서열 구조에선 부작용만 커진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수능 체제개편 방안으로 자격고사화가 부각되고 있다. 과거에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 체제개편 논의 속에서 간헐적으로 주장이 나왔지만, 이번 수능 오류 사태로 학계, 교원 단체, 시민단체 등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자격고사화란 수능은 절대평가로 ‘합격’ ‘불합격’만 가리고 다른 전형 요소를 강화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입시 전문가들은 이런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수능이 대입에서 영향력을 상실하면 학교생활기록부와 논술 같은 대학별 고사가 강화된다. 그러나 대학들 사이에서는 학생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교육부가 수시 학생부 전형을 강화하도록 요구하자 올해 대학들은 수시 선발 인원 자체를 줄여버리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대학들이 학생들을 출신 고교에 따라 차별해 사실상의 고교등급제를 운영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대학의 학생 선발권이 강화되고 대학별고사 위주로 대입이 치러지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자격고사화는) 본고사 강화, 대학의 선발권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 역시 답이 될 수 없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스펙 쌓기’를 대학이 평가하는 방식을 금지하고 있다.

본고사가 부활하면 사교육 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상당할 전망이다. 현재도 수능이 끝나고 논술 등 대학별고사를 앞둔 시점에 서울 대치동 논술학원에는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입시업체 관계자는 “서울대 등이 최근 논술을 폐지하면서 논술 사교육시장이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수능이 자격고사화된다면) 전국적인 논술 열풍이 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학 서열구조가 깨져야 수능 체제 개편도 효과를 발휘하리라는 게 중론이다. 이는 국립대 통합 전형을 비롯한 서울대 폐지론과 맞물려 있어 쉽지 않은 사안이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계 관계자는 “현재 교육부에서 대학 구조개편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지나치게 학생 정원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특성화 등으로 대학 서열을 근본적으로 완화하는 구조개혁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