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의 ‘집 한채 방정식’] 3500만원 전세 사는 A씨, 정부 지원 3000만원… ‘반지하 탈출’ 어렵다

입력 2014-11-20 03:56 수정 2014-11-20 09:19

지난 4월 결혼한 구모(32)씨 부부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별거’에 들어갔다. 여행 중 다투거나 성격 차이를 발견한 게 아니라 신혼집을 제때 구하지 못해서였다. 구씨는 경기도 하남, 아내는 서울 서대문에서 한 달간 각자 부모와 살아야 했다.

대한민국 예비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집 장만’이다. 치밀한 계획이 요구된다. ‘어디에 살 것인가’와 함께 ‘얼마나 빌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됐다. 다른 신혼부부와 비슷하게 결혼 준비를 시작한 구씨네가 일시적 별거에 이르게 된 사연은 이렇다.



‘렌트푸어’ 되기도 힘드네

구씨 부부는 직장과 결혼 후 육아, 양가 사정 때문에 서울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두 사람이 모은 돈은 5000만원, 대출 가능 금액은 1억원이었다. 1억5000만원으론 아파트 전세를 얻기 어려웠다. 지역은 성동 중랑 동대문 종로 서대문 중구, 집은 빌라나 연립주택으로 범위를 좁혔다.

반지하만큼은 피하기로 했더니 주말마다 발품을 팔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겨우 적당한 빌라를 찾았는데 입주 날짜가 문제였다. 결혼식 한 달 뒤에나 이사할 수 있었다. 부동산 중개소에선 “지금 이 집 계약하러 인천에서 오고 있다”며 두 사람을 압박했다.

구씨 부부는 지치기도 했고 집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한 터라 그 한 달간 잠시 떨어져 살기로 합의했다. 구씨는 “신혼 첫 달을 그렇게 보낸 게 미안하지만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다. 4∼5년 뒤 집을 살 계획이다. 꿈은 야심 찬데, 대출받느라 굽실거리고 대출금 갚느라 허리띠 졸라매는 삶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생각하니 우울하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수도권의 결혼 5년차 이하 신혼부부 10쌍 중 6·7쌍은 전·월셋집에 산다. 전세를 구하려면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몇 억원씩 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뜰하게 모아도 대출이나 가족 도움 없이는 모으기 힘든 돈이다. ‘빚’은 신혼부부 집 장만의 필수 조건이 됐다.



정부 지원은 ‘그림의 떡’

정부는 신혼부부의 집 장만을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임대주택은 남아돌고 신혼부부들은 지원을 체감하지 못한다. 정책이 현실을 겉도는 건 ‘비현실적인’ 조건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신혼부부가 근로자·서민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합산소득이 연간 55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전세보증금의 70%까지만 대출할 수 있어 30%는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이 소득 조건에 맞는 이들은 나머지 30%를 구하기 어렵고, 그 30%를 조달할 수 있는 이들은 소득 조건에 맞지 않아 도움을 받지 못하곤 한다.

박정훈(38)씨는 아내, 아들과 서울 은평구에 3500만원짜리 반지하 전셋집에 살고 있다. 아내가 둘째를 가졌다. 네 식구가 살기엔 너무 좁다. 월소득은 200만원. 아내는 아이 봐줄 사람을 찾지 못해 직장을 그만뒀다. 서울시의 주택자금 무이자 대출 서비스 ‘장기안심주택’을 알아봤다. 이 제도로 박씨가 빌릴 수 있는 한도는 3000만원이다. 가진 돈 3500만원을 더해 6500만원으론 반지하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추가 대출을 알아봤더니 장기안심주택 지원을 받으면 다른 대출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장기안심주택 지원을 포기하고 일반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 해도 최대한 빌릴 수 있는 돈은 8000만원 정도였다. 역시 네 식구 주거환경을 바꾸기엔 크게 부족했다. 박씨는 “정부는 지원해줬다 할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이들은 결국 아무 도움도 못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맞벌이 부부는 소득조건 때문에 주거지원 대상에서 탈락한다. 정부 지원을 알아보다 포기했다는 김모(36)씨는 “30대 중반 맞벌이 부부면 소득이 꽤 될 것 같아도 대출이자 내고 대출금 갚다보면 남는 돈은 얼마 없는데, 정부의 각종 지원에서도 배제되는 신세”라고 했다.



빚 없는 신혼부부의 딜레마

경기지역 초등학교 교사인 안모(38)씨 부부는 빚이 없다. 결혼 5년차인 이들은 가진 돈 안에서 전세를 구해왔다. 지금은 1억2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아내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싶어 한다. “집 살 형편이 되면 그때 사자”는 안씨에게 아내는 “떠돌이 생활이 불안하니 집부터 사자”고 했다. 안씨는 “빚을 갚아야 하는 불안감과 내 집 없이 옮겨 다니는 생활의 불안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우리 부부의 딜레마”라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서울 마포의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허모(37)씨는 “부모에게 빌린 돈도 ‘빚’이고 언제까지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며 “아이가 크고, 내 집 마련을 하려면 결국 어느 정도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허씨는 “정부나 정치권이 내놓는 주거정책을 보면 ‘빚내서 집 사라’거나 ‘임대주택 들어가라’는 것뿐이다”며 “저금리 대출이나 임대주택 확대로 젊은 부부의 집 고민을 풀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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