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A보좌관은 올해 정기국회에서 일이 크게 줄었다. 보좌관 경력 7년간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를 위해 책을 4권이나 대신 썼는데 올해는 출판기념회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는 “대정부 질문이나 보도자료를 엮어서 책을 만들던 잡일을 하지 않아도 돼 업무 부담이 크게 줄었다”며 “출판기념회는 일했다는 표시도 안 나는 가욋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 이후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출판 대목’이던 정기국회가 ‘쓸쓸한 늦가을’을 보내고 있다. 예년 이맘때에는 여야 의원 출판기념회로 국회 의원회관이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올해는 책을 내는 의원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19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 내 출판기념회 개최 건수(현역의원 기준)는 58건이었지만 올해는 25건으로 급감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9월 정기국회 이후 출판기념회가 집중됐으나 올해는 8월 이후 아예 단 한 건도 열리지 않았다. 여권 실세나 상임위원장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국회를 찾던 고위 관료들의 검은 관용차 행렬도 사라졌다.
의원들 사이에선 돈줄이 말랐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정치후원금 모금 외에 쉽게 두둑한 봉투를 받을 수 있던 출판기념회가 아예 없어서다. 여기에다 관행으로 존재했던 각종 단체들의 소액 쪼개기 후원에 대해 검찰과 경찰이 ‘입법 로비’라며 칼날을 들이대자 돈 나올 통로가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올해는 선거가 있어 3억원까지 후원받을 수 있는 해인데 아직까지 후원금이 4000만원도 안 들어왔다”며 “각종 경조사비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전액 환급이 가능한 10만원짜리 ‘개미’ 후원금을 모으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래도 의원들은 여전히 출판기념회에 미련이 남은 모습이다.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는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를 전면 금지하는 안을 내놨지만 당내 반발에 부닥쳤다. 새정치연합에서도 지도부는 출판기념회를 금지키로 했지만 아직 의원총회 통과라는 관문이 남아 있다.
보좌진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환영하는 쪽은 불투명한 돈이 사라지고 잡무가 줄었다는 이유를 든다. 한 보좌관은 “결국 돈 때문에 하는 거니까 의원 입장에서는 출판기념회 없어지면 곤란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면서 “이참에 출판기념회가 없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반면 오히려 부자만 정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푸념도 있다. 다른 보좌관은 “출판기념회도 못하고, 정당한 입법 활동을 통해 합법 계좌로 소액 후원금을 받은 것까지 ‘입법 로비’로 몰아세워버리니 이제 정치는 돈 많은 사람만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행정부가 입법부를 옥죄며 무력화하고 있다는 우려다.
어쨌거나 출판기념회를 열어 억대로 자금을 모았던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는 게 여의도의 현실 인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저서를 정가로 판매·구매하는 것 외에 축하금품을 모금하거나 기부하는 행위를 처벌토록 하는 선거법 개정의견을 확정한 상태다.
야당의 한 의원은 “기존 관행대로 출판기념회를 계속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며 “도서 구매자 명단과 모금액을 다 공개하는 등 이참에 아주 깨끗한 방식으로 원래 취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성수 최승욱 기자 joylss@kmib.co.kr
[기획]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철퇴 그 후… ‘출판 대목’ 실종 의원들 돈가뭄
입력 2014-11-20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