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손가락이 잊혀진 사람의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수가 있다. 천관녀 집을 찾아간 것이 말이 아니라 손가락이었다면 김유신은 손가락을 잘랐을까.’ (‘미주알고주알’ 중 ‘김유신의 손가락’)
하루에도 수 백 번 스마트폰을 누르는 손가락이다. 타성에 젖은 우리의 사고는 내 몸이나 주변의 물건을 습관처럼 볼 뿐 어떤 사유를 끌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인이나 작가가 되기는커녕, 남과 다른 문장 한 줄 쓰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감각의 기수’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권혁웅(47)의 이색 산문집 2권은 우리의 무딘 감각에 던지는 즐거운 자극이다. ‘미주알고주알’은 손, 얼굴, 귀 등 몸 부위를 통해, ‘생각하는 연필’은 단추, 클립 빵, 그릇 등 일상의 사물을 통해 인간사를 들여다본다.
몸과 사물에서 파생되는 사유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데, 그러면서도 가슴을 데우기고 하고 마음 아리게도 한다. 도넛을 보며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동그란 입’을 연상하는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사유의 감각을 벼린다. ‘숟가락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돼 반성의 시간을 갖고 비빔밥을 만드는 사람에게서 지휘자를 떠올린다.
사랑과 인생도 그의 촉수에 걸린다. “단추는 한 사람의 내면을 열거나 닫는 것, 지퍼가 단숨에 그 일을 해낸다면 단추에는 조심조심 짚어가는 마음이 있다”는 저자는 “비틀거리는 커다란 귀가 바로 나비라는 생각. 대지의 이곳저곳을 엿듣고 다닌다는 생각. 취생이거나 몽사의 한때”라며 인생무생을 노래하기도 한다.
시, 소설, 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세상을 보는 ‘촉’을 보여주는 책이다. 몇 줄짜리의 짧은 산문은 마치 경구처럼 명징하다. 함께 실린 그림도 글에 자극 받은 듯 위트가 넘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도넛, 아이의 동그란 입 닮았구나”… 시인 겸 평론가의 번뜩이는 ‘촉’
입력 2014-11-21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