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와 ‘6·25전쟁 행방불명 국군과 민간인 생사 확인’ ‘금강산댐 남북공동조사단 구성’ ‘동해철도 연결’ ‘북한 축구단과 보천보악단 초청 수용’.
12년 전 김정일과 만난 박 대통령
2002년 5월 13일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 합의사항이다.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만들어진 역사다. 미니 정당 대표에 불과했던 박 대통령이 12년 전에 이뤄낸 자신의 성과다. 박 대통령은 ‘절망의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자서전에서 “김 위원장이 ‘적당한 기회에 남한을 방문하겠다. 방문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겠다’라는 뜻을 전했다”고 소개했다. 지금 박 대통령의 방북 성과를 기억하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박 대통령의 방북을 다시 일깨운 단어는 ‘통일대박론’이었다. 지난 1월 6일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뜨거운 찬반 논란 속에서도 ‘통일’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상징어로 만들었다.
지난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는 드레스덴 선언을 세상에 내놓았다. ‘남북 공동 번영 위한 민생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목표로 제시했다. 통일 기반을 다진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기자로서 취재현장에서 지켜본 박 대통령은 정치인 입문 이전부터 통일을 ‘넘버원’ 단어로 갖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반발은 예상보다 컸다. 국내에서도 세월호와 대북 전단 살포 정국 속에 드레스덴 선언은 이미 구문처럼 돼 버렸다. 이명박정부를 거쳐 박근혜정부까지의 남북관계는 ‘잃어버린 7년’이라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나온다.
이대로 박 대통령이 자신의 넘버원 단어를 버려야만 할 것인가.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기회는 남아있다.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 판을 바꿀 오작교 카드다.
‘이희호 여사 공식 대북특사’ 카드가 그것이다. 지난달 28일 박 대통령과 이 여사의 만남은 만남 자체만으로도 신선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여사가 “북한을 한번 갔다 왔으면 좋겠는데 대통령께서 허락해줬으면 좋겠다”며 새로운 판을 만들었다. 박 대통령에겐 새로운 기회가 생긴 셈이다. 박 대통령은 “여사님 편하실 때 기회를 보겠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했다. 정부는 곧바로 북한 주민 접촉을 승인했고, 북한도 화답했다.
이 여사의 정치적 존재감과 상징성 커
이 여사의 공식 방북 목적은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를 통해 직접 짠 영유아용 겨울용 모자와 목도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영유아 보건사업에만 방북 목적을 한정하기엔 이 여사의 정치적 존재감이 남다르다. 이 여사는 2011년 12월 김 위원장 사망 당시 방북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났다. 지난 8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화환을 전달하면서 이 여사에 대한 방북 요청이 유효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방북에서 김 제1비서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또 첫 남북정상회담의 당사자인 김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해온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 여사의 공식 대북특사 카드는 국민의 지지 속에 투명하고 당당한 대북 관계를 이어간다는 박근혜정부의 기조와도 매치된다. 국내적으론 동서화합의 상징성도 갖고 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신뢰 구축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여사 카드는 유효하다.
일각에선 남북관계 개선의 열매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통큰 남북관계’를 볼 것이라고 믿는다. 이 여사의 공식 대북특사 카드는 비정상의 길을 걸어온 ‘잃어버린 7년’의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이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작은 통로’가 대통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
[데스크시각-김영석] 이희호 여사를 대북특사로
입력 2014-11-20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