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26억원짜리 모자

입력 2014-11-20 02:10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는 1800년 6월에 있었던 마렝고 전투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 마렝고 평원에서 맞붙은 전투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거의 궤멸 직전까지 밀리다 극적으로 전세를 뒤집어 대승을 거둔다. 나폴레옹은 이때 썼던 모자를 부대 수의사에게 선물로 줬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모자를 포함해 120여개의 모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엔 프랑스어로 비코르느(bicorne)라고 하는 이각모가 대유행이었다. 이각모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유행했던 트리코르느(삼각모)에서 뿔을 하나 뗀 것으로 직업에 따라 앞뒤, 좌우 뿔 다는 법이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모자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19개다. 17개는 세계 각지의 박물관에 보관돼 있고 두 개는 개인 소유다. 최근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이 프랑스 오세나 경매소에서 무려 188만4000유로(약 26억원)에 개인 소유 나폴레옹 모자 하나를 낙찰 받았다. 나폴레옹이 마렝고 전투 때 썼던 모자다. 비버 털가죽으로 만들어진 이 모자는 모나코 국왕 알베르 2세의 증조부가 1926년 수의사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그동안 모나코 미술관에 전시돼 있었다. 모나코 왕실은 왕궁 복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자를 경매에 내놓았다.

김 회장이 지불한 26억원은 모자 경매가로는 최고가로, 경매소 측이 당초 예상한 낙찰가 50만 유로(약 6억9000만원)의 네 배 가까운 금액이다. 김 회장은 “마지막까지 일본인과 경쟁하느라 가격이 다소 올라갔지만 30% 더 줄 테니 팔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환금성도 좋다”고 말했다. 하림은 이 모자를 건설 중인 신사옥이 완공되면 그곳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회사 사정은 거액을 들여 모자를 살 만큼 넉넉하지 않다. 하림 주가는 상반기에 비해 반 토막 났고, 3분기엔 45억92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손실을 모자 투기로 메우려는 것일까.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