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유임된 것을 가장 기뻐한 것은 세월호 유가족이었다. 한 유가족은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유가족 회의를 통해 이 장관 남게 해달라고 (정부 측에) 요청했다”며 “이 장관은 끝까지 팽목항에 남아서 우리 얘기를 들어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가족 역시 “우리에겐 남은 문제가 많다. 아직 정부에는 신뢰가 생기지 않지만 이 장관은 믿을 수 있다”고 했다.
장관직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정치권과 청와대는 물론 이 장관 스스로 느끼고 있지만 이번 개각에서 이 장관을 눌러 앉힌 것은 세월호 유가족의 힘이었다.
이 장관은 지난 3월 7일 ‘사고뭉치’ 윤진숙 장관 후임으로 취임했다. 윤 전 장관이 모든 잘못을 떠안고 나간 마당에 4선 의원 출신인 이 장관의 장관직 수행은 평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사고 대처 미비부터 정부 측에 대한 모든 비난의 화살은 이 장관에게 향했다. 사고가 나자나마 팽목항으로 달려간 이 장관은 처음 한 달은 유족들에게 멱살 잡히는 것이 일상이었다. 유족들의 원성과 고함이 두려워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잠깐 얼굴을 내비치고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장관은 멱살이 잡혀도 고개를 숙여 사죄했고, 유가족의 원성에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7개월 동안 군청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피곤한 몸을 눕혔고, 아침이 되면 팽목항 현장을 돌아다니며 유가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딱 정해진 유가족들과 대화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단 1명의 유가족이라도 장관을 보고 싶다고 하면 자다가도, 회의를 하다가도 달려 나갔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 장관의 팽목항 생활에 대해 “유가족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빼놓지 않고 기억했다가 대책회의 때 반영할 것을 지시했다. 유가족의 대변인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 장관의 진심은 통했다. 유가족들에게 뻣뻣한 태도에 참사의 아픔을 남일 같이 대할 것이라던 ‘장관’의 이미지를 자신의 일처럼 아파한 소탈한 아버지상으로 바꿔놓았다. 이날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 해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범대본 회의에 참석한 이 장관은 “(많은 이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찾지 못한 아홉 분의 실종자들을 가족에게 돌려주지 못한 채로 수중 수색을 종료하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저도 인간인지라 범대본의 여러 공직자와 잠수사들을 다그치기도 하고 화도 내기도 하며 순간순간 거의 무능함에 절망감이 들기도 했다”고 심경을 고백하기도 했다. 회의를 마친 이 장관은 진도군청, 실내체육관, 팽목항을 찾아 자원봉사자들과 실종자 가족 등과 악수하거나 포옹하며 마음을 전했다.
이 장관은 사퇴 관측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했지만 이미 사의표명은 직간접적으로 여러 번 한 상태다. 그는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청와대가 사퇴를 수락하면 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에 “맞다”며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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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1-19 03:54 수정 2014-11-19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