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위치한 페이팔 본사의 점심 풍경은 다른 회사와 조금 다르다. 수천명의 직원들이 식당으로 몰려나가는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해 가고자 하는 식당에 미리 주문을 한다. 계산을 위해 기다릴 필요도 없다. 페이팔로 바로 결제하면 된다. 할인쿠폰은 결제 시 알아서 적용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건 아이디와 비밀번호뿐이다.
함께 식사한 동료들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는 대신 휴대전화를 들고 그 자리에서 ‘점심 맛있게 먹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송금을 한다. 역시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번호 등은 입력하지 않는다. 모든 과정은 몇 초 안에 완료된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방문한 페이팔은 새로운 지불결제 방식을 연구하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장과 같았다. 애뉴 나야 페이팔 글로벌이니셔티브 상무는 실제 상점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고 페이팔을 통한 결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주는 쇼케이스를 둘러보며 “6∼8개월 뒤의 결제방식을 미리 엿볼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50년간 쇼핑생활 변화보다 앞으로 5년간 더 격렬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갑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온다=페이팔을 비롯한 간편결제 서비스는 단순히 빠르고 간편한 서비스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결제패턴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페이팔 서비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콘(Beacon)이다. 소형 USB 형태의 비콘을 매장에 설치하면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한 고객이 점포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결제가 완료된다. 매장에선 고객이 들어올 때 정보를 알 수 있어 고객 맞춤형 응대를 할 수 있게 되고, 고객은 물건을 사면서 주머니에서 아무것도 꺼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은행 계좌를 연계해둘 경우 개인 간 송금 역시 간편해진다. 한국에서 “카톡해”라는 말이 연락하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실제 미국에서는 페이팔의 밴모(Venmo)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Just Venmo me”라는 말이 돈을 보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지난달 서비스를 시작한 애플페이 역시 결제 풍경을 바꾸고 있다. 계산대에 서서 카드와 현금을 주고받는 것 대신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앞에 마련된 단말기에 접촉한 뒤 손가락을 홈버튼에 대면 바로 결제가 이뤄진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맥도날드에서 이뤄지는 모바일 결제의 50%를 이미 애플페이가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각 매장의 테이블 회전율을 빠르게 하는 등 효과도 가져온다.
◇문제는 보안=결제가 간편해질수록 보안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페이팔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매일 970만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결제 정보가 새나갈 경우 천문학적인 피해 규모가 예상된다. 이러한 부정적 목소리에 대해 마이크 버가라 페이팔 리스크관리 상무는 “페이팔은 다른 회사에 비해 리스크 관리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며 “페이팔이 0.33%의 매우 낮은 부정 사용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리스크 관리는 결국 데이터의 문제인데, 매번 결제가 일어날 때마다 기술이 정교해진다”며 “매일 약 1000만건의 결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부정사용자(bad man)를 걸러내는 기술이 점점 업그레이드된다”고 덧붙였다.
애플페이는 비자의 ‘토큰화(Tokenization)’ 기술을 활용해 보안 수준을 끌어올렸다. 토큰화는 카드 정보를 아이폰이나 가맹점 단말기 등에 직접 저장하지 않고 토큰만 저장하는 것이다. 토큰은 그 자체로 가치가 없는 난수로 이뤄진 것을 말한다. 해킹을 당해도 카드 정보로 변환되지 않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
샌프란시스코 비자카드 본부에서 만난 크리스토퍼 스윗랜드 부사장은 “비자만이 토큰과 카드에 동시에 접근해 결제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안정성을 높였다”며 “토큰 저장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미칠 영향은=정부가 간편결제 활성화에 나서면서 페이팔, 애플페이와 같은 업체들이 한국에 진출할 경우 국내 시장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는 이제 막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전 세계 망을 갖춘 업체와 맞붙을 경우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페이팔은 현재 국내에서 일부 업체와 제휴를 맺고 국경 간 영업만 하고 있다. 국내 영업 허가에 대해선 당국과 논의 중이다.
나야 상무는 페이팔의 경쟁자를 묻는 질문에 “페이팔이 온라인 결제시장 1위 업체이긴 하지만 전체 결제시장으로 보면 1%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99%가 있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에도 충분히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페이팔 등의 약진은 국내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IT업계, 이통사 등의 간편결제 서비스 진출을 부추기고 있다. 아직 페이팔 등이 본격 진출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중소업체들이 새로 경쟁력을 확보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카드사는 PG사와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와 PG사 각각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양자는 프로모션을 함께하는 등의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너제이=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르포] 앱으로 식당에 음식 주문→점심식사→‘페이팔’로 계산
입력 2014-11-19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