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크리스천은 부패한 정치와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정수이고, 예수가 세상에 보여준 하나님의 정치입니다.”
17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장충단로 경동교회. 희끗한 머리의 노(老) 학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주인공은 세계YMCA연맹 전 회장인 서광선(83)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 교수는 이날 ‘교회와 정치 그리고 정치신학’을 주제로 50여명의 신학생들에게 강연했다. 강연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육훈련원이 주최한 ‘에큐메니컬 신학대학원 연합 공동수업’의 하나로 열렸다.
서 교수는 강연 내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정치와 신학의 간극을 줄여갔다. 그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본군으로부터 일왕에게 경배하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며 “그때 우리 목사 전도사들은 매를 맞아가면서도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설교를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목회자들은 그러한 설교가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저 하나님이 한민족의 해방을 위해 일하신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서용문 목사의 일화도 소개했다. 평안북도 일대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했던 서 목사는 1950년 7월 한국전쟁 중 인민군의 손에 눈을 감았다. 전쟁 통에 피난을 떠났던 서 교수는 4개월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주검을 대동강 남쪽에 있는 교회 뒷산에 묻을 수 있었다.
서 교수는 “언젠가 한민족이 일본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설교했던 아버지는 결국 동족의 손에 죽었다”며 “처음에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는데, 공부를 할수록 복수가 하나님의 정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 크리스천이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살인을 계획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리스천의 정치참여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칼이 아니라 사랑 정의 평화 생명이라는 예수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로잡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예수를 제대로 믿는다면 현실에서도 그가 펼친 하나님 나라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축복하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사람을 위로한 것이 예수의 정치”라며 “누군가는 그 일을 예수의 선교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정치”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는 예배만 드리며 사회·정치 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묶여왔다”며 “하지만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정치에 참여할 때만 하나님 나라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교회는 부패한 정치와 싸워야… 그것이 기독교의 정수”
입력 2014-11-19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