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이랑 쌀만 있으면 여기서는 아직도 부자여∼.”
올해 여든 줄에 접어든 권모 할머니의 말이다. 그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백사마을’에 둥지를 튼 지는 20년이 넘었다. 남편은 수년 전 세상을 떠났고,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30대 후반의 딸과 함께 지낸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의 유일한 수입은 딸 앞으로 나오는 40만∼50만원 정도의 장애수당이 전부다. 빠듯한 형편 탓에 겨울철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에서 꼬박꼬박 채워주는 연탄과 함께 밥 지어 먹을 쌀만 있어도 부자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백사마을. 골목길을 오르며 만난 연탄사용가구 주민들은 저마다 연탄에 대한 애증을 안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삶의 늘그막에 연탄을 때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 고단할 만한데, 없는 형편에 연탄을 지원해주는 봉사단체와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한결같았다.
권 할머니 윗집에 사는 김정순(84) 할머니는 집 입구에 연탄을 쌓아두고 산다. 집 안에는 연탄을 보관할 만한 공간마저 없기 때문이다. 위·아래 앞니 6개가 빠진 김 할머니는 천에 덮인 연탄더미를 가리키며 “이걸로 겨울 납니더”라고 말했다. 연탄을 때는 주민들 중에는 기름보일러를 이용하다가 기름값이 오르면서 연탄으로 다시 갈아탄 이들도 적지 않았다. 김 할머니도 그 중 한 명이다.
이곳 백사마을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등 서울지역 연탄사용가구 주민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서울연탄은행 장화수 사회복지사는 18일 “연탄사용가구 가운데 독거노인이 70% 정도인데, 75세 이상 여성의 비중이 높다”면서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차상위 계층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자식이 있어도 부양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구가 많다. 또 강북인 백사마을에는 고령층이 많고, 강남인 구룡마을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연령대의 도시빈민층이 많다.
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는 “연탄을 때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보면 외로워하고 한이 많으며, 우울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면서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도움이 바로 ‘연탄 나눔’이다. 연탄수요조사를 위해 수시로 주민들을 만나 상담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고 한다. 85세 동갑내기인 김동갑·김일순씨 부부는 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가 그분들 때문에 이렇게라도 살지, 아니면 벌써 죽었을 몸이여….”
허 목사는 “연탄은 따뜻한 겨울을 나게 만드는 도구이면서 때로는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도 된다”면서 ‘사랑의 연탄나눔’ 캠페인에 교회와 성도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연탄은행 후원, 한 장 값 500원부터 가능
밥상공동체·연탄은행은 올해 연탄사용가구를 총 16만8000 가구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외부로부터 연탄을 지원받아야 하는 이른바 ‘에너지 빈곤층’은 약 10만 가구로 보고 있다. 연탄사용가구는 동절기에 보통 하루 3∼4장을 땐다. 연탄 한 장 값이 500원이므로 2000원 정도면 독거노인이 하루 종일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연탄은행 후원방법은 다양하다. ‘사랑의 연탄후원’은 연탄 한 장 값 500원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연탄가스배출기 교체를 위한 후원은 가구당 5만원, ‘사랑의 연탄보일러’ 교체 후원은 가구당 20만원부터 할 수 있다. 재정적 후원과 함께 현장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수 있다. 단, 자원봉사는 적어도 봉사시점으로부터 한 달 전에 신청해야 한다. 연탄 투입 시점 등 연탄 수혜자의 여건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탄은행은 후원·자원봉사 참가자들에게 기부금 영수증과 봉사활동확인서, 연탄천사증 등을 발행해준다. 후원 및 자원봉사 참여 문의는 홈페이지(babsang.or.kr)나 전화(1577-9044)로 가능하다. 후원계좌는 기업은행 002-934-4933(예금주:연탄은행)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연탄 수혜자들 이야기] “연탄나눔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 몸이여…”
입력 2014-11-19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