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나미] 줄줄 새는 복지예산부터 막자

입력 2014-11-19 02:34 수정 2014-11-19 14:56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시부모님을 포함한 식구들 아침 준비와 도시락 싸는 일까지 출근 시간은 완전 전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유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렴한 비용으로 급식을 사 먹을 수는 있었지만 미국의 급식은 으악 소리가 났다. 야채 하나 없는 햄버거, 기름 범벅 튀김, 치즈와 밀가루만 있는 피자를. 따뜻한 밥과 반찬에 길들여 있는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어 도시락 싸기는 계속됐다.

그러나 대가족과 부대끼며 밥하기에 이골이 난 필자의 고루한 생활방식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3만 달러에 육박한 지금의 바쁜 젊은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을 해준다 해도 출산 파업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요리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엄마의 수고가 문제가 아니라 서울에만 5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급식이 당장 끊기면 밥을 굶는다는 사실이다. 하루 종일 맞벌이를 하거나 편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저소득층 아이들 중에는 방과후 학교 등에서 밥을 주지 않으면 과자와 빵, 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상처주지 말아야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해주고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돈을 받자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안다. 문제는 무상급식 바우처를 받는 아이들이 상처받는 상황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빈곤 계층을 위한 복지예산이 최근 몇 년간 계속 삭감되는 상황이라 무상급식과 무상보육비를 절약해서라도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현장의 소리도 적지 않다.

나는 보수건 진보건, 집권당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 야당 쪽에 표를 던졌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의 지갑을 열겠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이나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 굳이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고집 피우는 현재 야당의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심하게 저소득층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 할 방도는 꼭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국처럼 급식식권을 부모들이 각자 사게 하고, 급식이 싫은 사람들은 엄마표 도시락도 가끔 먹을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싶다.

빈곤층 아이들에게는 따로 배달 형식으로 똑같은 모양의 식권을 보내거나 동사무소 등에서 수령하게 해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크게 상처입지 않을 것 같다. 무상보육 역시 선별해서 빈곤층이나 차상위층들에게만 동사무소나 구청 등에서 바우처를 수령하게 하면 돈을 내겠다는 중산층도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고 더 자유롭게 육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또 성격장애 등이 있어 근로능력이 있는데도 일은 하지 않고 복지수당만 타는 경우도 상담 현장에서 자주 본다. 나랏돈으로 술이나 약물만 계속 먹고 있으니, 그 돈을 끊고 대신 입원을 시켜야 할 때도 있지만 이런 저런 법률이나 인권문제 등으로 쉽지 않다. 노숙인이 넘쳐나는 이유 중 하나다. 충분히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보조만 받는 멀쩡한 이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국가에서 빈곤층을 배려하는 돈을 타 해외여행을 갔다 온 후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하는 이를 만난 적도 있다.

현장의 소리는 없고 정치논리만 난무

복지 논쟁은 뜨겁지만 직접 현장에서 부대껴본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없고 관료들의 탁상 논리, 정치인들의 세몰이, 감정적인 기사만 넘친다. 큰 낭비다.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은 비참하게 생을 마치고, 소외감으로 다른 이를 해치는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증가하는 지금의 정책에는 허점이 많다. 빈부 차이가 큰 필리핀과 멕시코 등에서는 부자나 고위 관리들이 총 든 무사들을 거느리고 다니지만 납치와 살해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빈부 차이가 점점 커지고 복지예산이 이리저리 샌다면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환자들을 사랑하지만 할 것, 하지 말 것을 구별해줘야 하는 의사 입장에서, 복지정책이 정치논리에 휘둘려 산으로 가는 일이 없길 기원할 뿐이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