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가 끝나면 구급약과 사람들이 기부한 옷가지를 챙겨 보르네오 섬으로 여행을 떠나던 농부 부부가 있다. 혹독한 더위와 밀림 때문에 외지인은 며칠도 견디지 못하는 원주민 마을을 돌아다니며 농사법을 전하고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그들이 한 일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 일을 해왔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한 계절이 지나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씨를 뿌리고 비를 기다리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허리를 굽혀 쌀농사를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한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연습장에 그 나라 말을 빼곡하게 채우는 일이다. 라면 박스에 이런 깜지가 가득 있다. “내가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받아준 거예요. 그러면 나도 그들 말을 이해해야지요. 동 트기 전까지 쓰고 또 씁니다.” 할머니는 그 시간에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처음 보르네오 섬에 갔을 때는 그들도 그 일이 20년 이상 이어질 줄 몰랐다고 한다. 다만 원주민들과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지면서 이별이 아프고 슬펐다. 그것이 다시 보따리를 싸고 그곳에 가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들이 찾아가면 원주민들은 1년 내내 만들어온 물건을 선물했다. 할아버지는 집에다 그것들을 모아 작은 박물관을 만들었다.
또한 이들 부부는 치료만 제때 받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도 밀림 속에 방치돼 있는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수술을 받게 도왔다. 병원비로 자식들 축의금을 몽땅 써버리더라도 중요한 것은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인생의 70 고개가 넘어가고 보니 세상을 더 크고 넓게 볼 줄 아는 눈이 생겼습니다. 한창나이라는 20대에는 40대, 50대가 되면 마치 세상의 하늘색조차 달라 보일 것 같았지만 정작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하늘색은 여전히 파랗고 아름답습니다. 20대 때 보았던 그 하늘색보다 더 짙푸르고 아름답습니다.” 오정면 할아버지와 문달님 할머니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토록 아름다운 기록을 본 적이 없다.
곽효정(매거진 '오늘' 편집장)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록
입력 2014-11-19 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