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 막힌 러… 극동으로 눈 돌리나

입력 2014-11-18 04:43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 국가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극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3월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 조치가 이어지자 러시아는 돌파구 마련 차원에서 극동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극동지역 개발을 통해 외자를 유지하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극동 개발을 고리로 러시아와 북한이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다.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외톨이 신세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정책을 지지하면서 러시아의 환심을 사고 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북한의 채무를 탕감한 데 이어 북한 내 철도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는 등 적극 화답하고 있다.

2012년 3선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극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같은 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과 유럽을 통합하는 ‘유라시아경제동맹’ 구상을 밝힌 게 대표적이다. 같은 해 5월에는 극동 개발을 전담하는 ‘극동개발부’를 신설했다. 2025년까지 연 4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는 동시에 연 20조원 이상의 국내외 민간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지난 4월 푸틴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제특구로 지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극동 개발 성과가 지지부진하자 지난 7월 관련 부처를 질책하기도 했다. 그는 “극동 개발에 가능한 한 우선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라”며 재무부와 경제개발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푸틴의 질책에 러시아 극동개발부는 부랴부랴 극동 관구 14개 지역을 ‘우선개발 지역’으로 선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자원 개발·판매 등 자원의존 경제를 탈피해 수출 지향적 산업구조를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후보지에는 항공기 생산시설을 갖춘 곰소몰스크나아무레나 석유공장이 입지한 나훗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극동개발을 추진하는 러시아에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러시아 사회과학원의 한반도 전문가 그레고리 톨로리야 박사는 북한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가 서방과 파국을 맞으면서 한반도는 푸틴이 추진하는 ‘동방 정책’의 핵심 지역이 됐다”며 “특히 북한은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정책을 지지하는 소수 국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 북한이 러시아에 진 채무를 90% 탕감해준 데 이어 10월에는 북한 철로 3500㎞ 구간을 재건하는 ‘포베다(승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극동개발부 주도하에 러시아 토목업체 ‘모스토빅’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다. 250억 달러(약 27조원)에 달하는 공사비용은 러시아 기업들이 북한 지하자원을 개발해 얻은 수익으로 충당한다. 경제지원과 농업협력, 비자면제협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러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북한 역시 러시아의 잇따른 ‘구애’에 적극 화답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 노동신문은 러시아의 극동 개발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러시아에서 원동지역 발전에 힘을 넣게 된 것은 지금까지 서부지역 개발에만 치중한 불균형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2일에는 드미트리 야조프 전 소련 국방장관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보낸 감사편지를 공개하며 긴밀해진 양국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