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어린 대한민국 가정 행복 재생 코미디 “아빠가 되어 줄게”

입력 2014-11-19 02:45
아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빠 역할을 해주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한 장면. 주인공 김상경이 아빠와 함께 야구장에 가보는 게 소원인 한 초등학생 가족과 야구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 메가박스 제공
명문대 출신이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하며 10년째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태만. 생활력 강한 아내에게 걸핏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초등학생 딸마저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빠를 보다 못해 학교 나눔의 날에 폭탄선언을 한다. "저는 아빠를 내놓겠습니다!" 딸은 급기야 인터넷 중고시장에 아빠를 내놓아 태만은 이른바 '아빠 렌탈 사업'에 나선다.

20일 개봉되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아빠가 되어 달라”는 황당한 주문을 받은 태만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아빠 역할을 하면서 겪게 되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다. 때로는 망가지기도 하고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태만 역을 배우 김상경(42)이 맡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 ‘화려한 휴가’, 드라마 ‘대왕세종’ ‘국가가 부른다’ 등에서 묵직한 캐릭터를 선보인 그가 아닌가.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시사회 후 만난 김상경은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정말 재미있게 찍었어요. 제가 그동안 무거운 역할을 주로 맡아 주변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죠. 하지만 평소 털털한 제 성격과 비슷한 거 같아요. 아이는 다섯 살짜리 아들 한 명이 있는데 이번에 아빠라는 존재의 소중함과 가치 같은 걸 많이 깨달았어요.”

영화는 장난처럼 시작한 ‘아빠 역할 대신 해주기’로 인해 코믹하게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김상경은 이전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개그본능을 발휘한다. 혀 짧은 대사로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입 밖으로 혀를 내보이며 바보 같은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아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며 “이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느냐”고 배역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맡은 아빠 역할은 처음에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다가 나중에는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야구장에 같이 가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의 아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잊지 못한 나머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의 외아들, 회사밖에 모르는 기업체 사장의 딸이 원하는 자상한 아빠, 아이를 가진 미혼모의 남자친구 등을 친숙하면서도 실감나게 연기했다.

그는 “지금까지 해온 작품은 무거운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밝고 건강한 가족영화를 선택했다”며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에 끌렸다”고 밝혔다. 최근 실시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아빠의 45.2%가 자신을 친구형 아빠라고 생각하지만 가정에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답한 학생은 7.9%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아빠들의 현주소다.

김상경은 영화에서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이중생활을 한다. 아내에게는 근사한 회사에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밖에서는 아빠 대역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정작 자신의 딸에게는 소홀해지자 “이제 남의 아빠 역할 그만하고 우리 아빠로 돌아오라”며 울먹이는 딸의 애원에 어쩌지 못한다. 비 오는 날 공원에서 마주한 아빠와 딸의 극적인 포옹이 관객을 울컥하게 한다.

‘온 국민 행복 재생 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는 홍부용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연가시’ ‘숨바꼭질’ ‘카트’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문정희가 아내 역을 맡았다.

김상경은 로맨틱 코미디 ‘내 남자의 로맨스’(2004) 이후 10년 만에, 문정희는 정통 코미디는 처음이다. ‘선생 김봉두’ ‘이장과 군수’ 등 조감독을 맡은 김덕수 감독의 데뷔작이다.

유명인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기를 그린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와 아이들의 여행을 담은 MBC ‘아빠! 어디가?’ 등은 아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육아에 서툴기만 한 아빠들이 차츰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바야흐로 아빠의 시대에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가 흥행에 성공할지 관심이다. 112분. 12세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