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연탄이 없어요” 쪽방촌에 한파는 벌써 왔다

입력 2014-11-18 02:17 수정 2014-11-18 09:33
겨울이 성큼 다가온 17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104마을 쪽방촌에서 한 할머니가 연탄을 갈고 있다. 불황에 ‘연탄 후원’이 줄면서 이 마을은 집집마다 연탄창고에 빈자리가 늘어가고 있다.김지훈 기자

골목에선 찬바람에 낙엽 쓸리는 소리만 들렸다. 박모(66)씨와 최모(61)씨는 퇴락한 마을의 마지막 주민이라도 된 것처럼 나란히 마른 입술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박씨가 앉은 의자 아래 요강만한 항아리에는 이미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담배꽁초 일곱 개비가 흙더미 위에 구부러져 있었다. 그 옆 디딤돌에 걸터앉은 최씨는 산동네를 걸어 올라온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대표 허기복(58) 목사에게 흐리터분한 말투로 물었다.

“목사님, 연탄 안 와요?” “그러게 올해는 시원찮네.” 허 목사는 말끝을 흐렸다.

17일 찾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마을 쪽방들은 모두 빈집처럼 냉기가 감돌았다. 마을을 돌아다닌 2시간여 동안 길에서 만난 주민이 7명뿐일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집안에서도 인기척은 새나오지 않았다. 104마을 세입자 대책위원회는 전체 1500여 가구 중 아직 1000가구 정도에 사람이 산다고 말했다. 3분의 1이 빈집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이 시간에고 저 시간에고 사람은 없어. 다 빈집이야. 어른도 없는데 애들이 있을 수가 없는 거고. 노인네 몇 분 안 되지만 여름에는 그래도 저쪽 가게 쪽에 앉아서 얘기들 하는데 요즘은 밖에 나오지를 않아. 추우니까.” 얇은 운동복 상하의에 여름 조끼를 걸친 박씨가 말했다.

밤낮을 대부분 집에서 보내는 주민들은 오지 않는 연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년에는 10월부터 쇄도하던 연탄 후원이 올해는 뚝 끊겼다. 이 마을에서 연탄을 때는 집은 600가구 정도다. 연탄은행은 이 중 450여 가구에 연탄을 지원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많이 들어왔다고. 연탄이 남아돌아서 때고 남은 것도 있었어.” 박씨가 사정을 설명하자 최씨가 “진짜 많이 들어왔어”라고 거들었다. “좌우지간 이 시기면 상당히 많이 올라왔다고. 그런데 올해는 연탄이 통 안 와. 후원이 안 들어오니까 저 목사님도 어려운 거지.”

연탄은행이 지난해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기업 등에서 기부 받은 연탄은 121만4000여장이었다. 올해는 절반인 60만7000여장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2010년 85만장, 2011년 86만7000장, 2012년 89만9000장 등 매년 늘어온 연탄 후원은 몇 년 만에 처음 줄었다. 지난해 1년간 후원받은 연탄은 401만2000여장이었는데 올해는 11월 중순까지 208만6000여장에 그친다.



집집마다 한구석에 널빤지나 벽돌을 깔아 만든 연탄창고는 가뭄철 곳간처럼 비어 있었다. 주민들은 몇 장 없는 연탄을 아껴 태우며 냉기만 겨우 물리치는 정도로 초겨울을 버티는 처지였다. 이들이 쓰는 가정용 연탄은 하나를 천천히 태우면 길게는 8시간쯤 간다. 연탄난로는 구멍마다 연탄 3장이 들어가는데 이 구멍이 하나인 것(1구)보다 둘인 것(2구)의 화력이 좋다. 비교적 젊은 사람은 1구짜리, 고령이거나 몸이 아픈 노인은 2구짜리를 쓴다고 주민들은 설명했다.

박씨 집 맞은편 이모(56)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가 연탄난로 뚜껑을 열고 집게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연탄을 꺼내는 동안 몸집이 작은 어머니는 이불 위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박씨는 “원래 우리 어머니도 여기서 나랑 같이 사시는데 요즘은 연로하신 데다 추우니까 경기도 여주의 동생네에 자주 가 계신다”고 했다. 박씨나 이씨를 비롯한 주민은 대부분 104마을이 조성되던 1960년대 후반부터 한동네에서 살아왔다. 당시 정부는 서울 용산 청계천 안암동 신설동 일대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박씨는 “전남 순천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왔는데 그때 시세로 5만원짜리 집을 속아서 27만9000원에 샀다”고 말했다.

박씨는 연금과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월 40만원 정도로 생활하고 있다. “보다시피 동네가 이러니까 우두커니 앉아서 뭐해. 먼 산 보고 옛날 생각하면 막 머리 어지럽고 막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고 그런 충동을 느끼니까 담배 피우고 그러는 거야.” 허름한 쪽방들이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는 마을길에는 하얗게 타버린 연탄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연탄은행에서 연탄을 지원받는 곳은 104마을 외에도 서울에만 수십 곳이다. 서울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3126가구 중 2518가구가 남의 도움을 받아 겨울을 난다. 전국적으로는 연탄을 때는 16만8473가구 중 10만 가구가 지원을 받아야 하는 저소득층이라고 연탄은행은 설명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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