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의 동행-김동욱 교수의 백혈병 이야기] 절망에서 희망 꽃피운 청년

입력 2014-11-18 02:09

요즘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건과 갈등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가끔 가슴이 답답해진다. 12년 전인가. 만 20세의 앳돼 보이는 젊은 청년 한 명이 개인의원에서 만성골수성백혈병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부모님과 함께 진찰실로 들어왔다. 글리벡으로 치료를 시작하고 해가 지나면서 어느 정도 백혈병이 안정을 찾아가자 하루는 자신의 꿈이 성직자가 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며 꽃동네 수도회에 입회하고 싶다고 진료 소견서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극구 말렸지만 워낙 본인의 신념이 강해 긍정적인 소견서를 써 줄 수밖에 없었다. 몇 해가 지나 서원을 하고 수사가 된 청년은 자신의 소원대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떠났다. 몇 달이 지난 후, 환우회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 왔다.

‘안녕하세요. 2002년 4월에 백혈병 판정을 받고 올해로 10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이 너무나 값지고 고귀해서 제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올해 저는 서원을 하고 필리핀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필리핀에 가고 싶다고 하였을 때 가서 견딜 수 있겠느냐 걱정했지만 제 마음에 너무나 큰 꿈이 있었기에 이곳에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데리고 와 그 사람들 마음 안에 결핍된 사랑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다시 일어 설 수 있도록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것은 묘지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에 묘지가 있는데 너무나 충격적인 것은 3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버려진 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쓰레기를 주워서 팔고 하루에 약 5천원을 벌면서 그 돈으로 간신히 하루에 1끼 내지 2끼를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방문해서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데 빵 한 조각에 몇 십 명의 아이들이 달려듭니다. 놀라운 것은 이 사람들이 아무리 힘들고 가난해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결핵에 걸린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보험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길가에서 그냥 죽어갑니다. 또 국립병원을 간다고 해도 안타까운 사실은 돈이 없는 사람들은 치료를 전혀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제가 백혈병 환자로서 지난 10년 동안 글리벡을 복용하며 이곳에서 느끼는 것은 백혈병이 우리를 좌절시킨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인생과 꿈까지 빼앗아 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백혈병은 제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백혈병이 걸렸지만 그래도 매일 약을 먹고 치료할 수 있어서, 그리고 이곳에 와서 저는 참 행복합니다.’

그가 필리핀에서 보내 온 편지다.

절망을 안겨준 ‘백혈병’ 진단, 하지만 힘든 투병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현실에서 피어오르는 것 같다. 이 글은 ‘우리가 건강할 때 우리 주변의 수많은 행복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더 나은 치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많은 환우들의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살만하다’는 글들을 접하면서 우리 의료진도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에너지를 재충전해 본다.

김동욱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