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업체들의 카르텔(담합)은 비일비재하다. 잊을 만하면 터지고 과징금을 아무리 부과해도 근절되지 않는다. 건설사들의 입찰 담합, 제조사들의 가격 담합 등 숱한 사례들이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담합의 관례화와 일상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내 기업들을 ‘호갱’(호구+고객)으로 만든 외국계 업체들의 국제 카르텔이 16일 적발됐다. 일본·독일계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서 무려 14년간 베어링 가격 등을 담합해온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난 것이다. 담합 14년은 역대 최장이다.
담합은 엔에스케이 등 일본 7개 업체들이 주도했다. 이들 업체는 1990년대부터 가격경쟁을 피하기 위해 ‘아시아연구회’라는 국제 카르텔 협의체를 결성, 한국에선 98년부터 2012년까지 시판용·철강설비용·소형직납용 베어링의 가격 인상, 물량, 납품 수요처 등을 담합했다. 여기에 독일 업체인 셰플러코리아와 국내 업체인 한화가 일부 제품 담합에 가담했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 현대제철 삼성 LG 등 국내 기업들과 소비자들이 농락을 당했다. 공정위가 총 9개 업체에 과징금 778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해 철퇴를 가하기로 했다지만 이걸로 막을 내려서는 안 된다.
우선 이번 담합이 가능했던 점을 직시해야 한다. 각종 기계류의 회전 운동을 가능하게 해줘 ‘기계산업의 쌀’로 불리는 베어링은 자동차, 철강, 전자 등 우리 기간산업의 핵심 부품이다. 그럼에도 베어링 완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는 거의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업체들이 대거 해외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외국 업체들이 국내 베어링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원천기술과 대규모 공정설비 등이 필요한 베어링산업은 기술·자본집약적 장치산업이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반면 국내 업체들의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은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고품질 베어링의 경우 상당부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산업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에 핵심 부품산업 육성이 절박하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사설] 외국계 베어링 담합이 말해주는 우리 산업 현주소
입력 2014-11-18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