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진료 가로막는 건보 적용 기준 손본다

입력 2014-11-18 02:14 수정 2014-11-18 09:36

백모(58·여)씨는 얼마 전 120만원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일을 경험했다. 갑자기 팔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뇌경색이 의심돼 집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다. 의사는 ‘암이 전이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간암 환자인 백씨는 서둘러 대학병원으로 갔다. 이번엔 암을 검사하는 뇌 MRI 촬영을 다시 해야 했다.

간호사는 MRI 검사비 120만원이 찍힌 진료비 계산서를 내밀었다. 직전 병원에서 찍은 MRI 비용은 7000원이었다. 뇌 MRI의 경우 뇌경색은 1년에 한 번, 암은 6개월에 한 번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하루 전에 뇌 MRI를 찍은 탓에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게 간호사 설명이었다.

백씨는 처음 간 병원에서 비급여 비용으로 MRI 검사비를 다시 계산하고, 대학병원에 사정을 설명한 뒤에야 건보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자 당초 검사비의 5% 수준인 5만여원으로 줄었다. 처음 간 병원의 비급여 MRI 비용은 13만원이었다.

백씨는 “뇌경색인 줄 알고 갔다가 암이 의심되면 큰 병원에서 MRI 촬영을 다시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인데, 무슨 이런 기준이 다 있느냐”고 반문했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건보 적용 기준을 정부가 전면적으로 손본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행위, 의약품, 치료 재료 등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개편하기 위해 18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국민과 의료계 건의사항을 받는다고 17일 밝혔다.

그동안 건보 적용과 관련해 일부 기준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 ‘적정 진료’를 막고, 환자의 ‘의료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만들었지만 정작 의료 현장에서는 그 기준이 제대로 된 진료를 가로막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장모(31)씨는 몇 달 전 퇴근길에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함께 차에 탔던 동료 2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고 장씨만 살아남았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주 2회 30분 상담은 늘 부족하다. 하지만 외래 진료는 주 2회만 건보 적용이 된다.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했지만 오랜 병가 끝에 다시 근무를 시작한 장씨는 ‘주 2회의 부족한 진료’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했다.

정부는 불합리하다고 지적받은 사례들을 분석하고 의약단체, 환자단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개선 의견을 접수한 뒤 ‘급여기준 개선 실무협의체’를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협의체에서는 현행 기준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도출해 낼 예정이다.

복지부와 심평원은 지난 11일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8개 단체가 참석한 이해관계자 간담회도 열었다. 간담회에서 손명세 심평원장은 “의도와 달리 불합리한 상황이 생기는 게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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